김기섭 고상돈 박영석…영원히 산이 된 그들

입력 2018-10-15 04:04
지난 2011년 11월 실종된 고(故) 박영석 대장(가운데 사진)과 신동민(왼쪽 사진), 강기석 대원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동숭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관계자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뉴시스
김창호 대장(49·왼쪽 두 번째)을 비롯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4명과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54)의 시신이 14일 네팔 현지에서 모두 수습됐다. 이들은 지난 12일 네팔 구르자히말 해발 3500m 지점에서 발생한 눈사태와 돌풍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부터 임일진 대원(49·다큐멘터리 감독), 김창호 대장, 이재훈(24·식량·의료 담당) 유영직(51·장비 담당) 대원. 카트만두포스트
한국 산악인의 안타까운 사고는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 산맥에 대한 등정이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1971년 김정섭, 김호섭, 김기섭 형제가 포함된 한국 원정대가 히말라야 마나술루(해발고도 8163m)를 오르던 중 김기섭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마나술루는 56년 일본 원정대가 처음 오른 후 정복하지 못한 봉우리로, 김호섭과 김기섭은 5월 4일 7600m까지 등정한 후 캠프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기섭이 돌풍으로 40m 아래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추락해 사망했다. 한국 히말라야 원정 사상 최초의 조난 사망 사고였다.

이듬해에는 김정섭, 김호섭 형제와 막내인 김예섭이 합류한 원정대가 다시 마나술루 등정을 시도했다. 선발대가 7250m에 캠프를 설치하고 등정을 노렸으나 폭설에 의한 눈사태로 3캠프(6500m)에 있던 김호섭 등 대원 5명과 셰르파 10명이 희생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김예섭도 눈에 휩쓸렸으나 1100m 아래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두 번의 원정을 주도했던 김정섭은 두 동생을 히말라야에 묻어야 했다.

78년에는 77년 한국인 최초 히말라야 원정에 성공했던 고상돈이 이일교, 박훈규와 함께 미국 알래스카 매킨리(6194m)를 등정한 후 하산하다가 추락사했다.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도 99년 엄홍길과 함께 안나푸르나(8091m)를 오른 후 하산하다가 7800m 지점에서 셰르파와 함께 실종됐다. 2006년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시작해 11개 봉우리를 밟았던 고미영도 2009년 12번째인 낭가파르밧(8125m)을 등정한 후 내려오다 추락해 유명을 달리했다.

2011년에는 히말라야 14좌, 3대 극점(남극·북극·에베레스트),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정복한 박영석이 이끈 원정대가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르던 중 신동민, 강기석과 함께 실종됐다. 여러 차례의 수색에도 시신을 찾지 못해 시신 없이 영결식을 치렀다. 이번에 사고로 사망한 김창호 대장 역시 당시 시신 수색에 참여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