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어김없이 모이는 연탄 천사들

입력 2018-10-15 00:00
트럭도 리어카도 접근이 어려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13일 연탄은행 봉사자들이 지게를 지고 연탄을 나르고 있다. 연탄은행 제공
엄마와 함께 연탄 나눔에 동참한 남매(위)와 고사리 손으로 연탄을 한 장씩 배달한 초등학생(아래). 연탄은행 제공
서울 마지막 달동네인 백사마을에 연탄 지게를 멘 천사들이 다시 모였다.

아침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곳은 난방이 절실한 겨울이다. 3.65㎏ 무게의 연탄 한 장을 36.5도 체온의 사람들이 일일이 등에 지고 나르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그래야 늙고 힘없고 아픈 곳 많은 백사마을 주민들이 365일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은 13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 일명 백사마을에서 ‘2018년 서울연탄은행 재개식’을 열었다. 불암산이 굽어보는 백사마을은 1960년대 청계천과 남산 일대 철거민들이 강제이주로 옮겨와 뿌리내린 동네다. 실수로 연탄을 떨어뜨리면 한참을 굴러갈 정도의 경사지에 슬레이트 지붕 단층집들이 거미줄 같은 골목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차량 접근이 불가능하다.

연탄은행은 전국 31개 지역연탄은행을 통해 이곳 백사마을 같은 에너지빈곤층 밀집 지역에 연탄을 나눈다. 장당 700원의 연탄을 기부 받는 ‘후원신청’과 이 연탄을 일일이 사람 몸으로 나르는 ‘봉사신청’ 두 가지 참여 방법이 있다. 올해는 후원신청이 상대적으로 적다. 허기복 목사는 “지난해엔 연탄 비축 물량 10만장으로 출발했는데 올해는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첫 배달물량 마련도 쉽지 않았다”며 “전국 15만 연탄가구 중에서 10만 가구의 연탄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탄 배달이 시작되자 모두들 지게를 하나씩 멨다. 연탄을 두 줄로 쌓아 여성은 평균 4장, 남성은 6장씩 지게에 올리고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갔다. 안내자가 없으면 어디에 어떻게 연탄을 내릴지 찾기가 쉽지 않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 연탄 6장은 등에 메고 1장은 손에 들고 숨이 턱까지 오른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자도 힘든데 무겁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안암감리교회 청년부 회장이고 연탄을 지고오던 중 다른 봉사자가 힘들어해 한 장을 덤으로 더 넘겨받았다고 답했다. 경희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안연지(23·여)씨였다. 안씨는 “교회 청년부 20명과 함께 왔다”면서 “누군가 따뜻하게 이 연탄으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볍다”고 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참여한 봉사자도 많았다. 몸으로 이웃 나눔을 일깨워주려는 의도였다. 강원도 원주에서 온 강필주(37)씨는 다섯 살 아들 민혁이와 함께 부지런히 연탄을 날랐다. 아빠는 여섯 장, 아들은 한 장씩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강씨는 “봉사에 오면 기분이 좋아 매년 4∼5차례는 참여한다”면서 “아들이 거창하게 이웃사랑을 배우기보다 이 분위기와 사람들 표정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탄은행이 설립한 ‘신나는지역아동센터’ 초등학생들도 연탄 100장을 기부하고 배달 봉사를 함께했다. 백사마을 인근 차상위 계층 및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의 넉넉지 못한 친구들인데 한 푼 두 푼 모은 용돈 7만원을 냈다. 한 어린이는 연탄은행 네 글자로 시를 지었다.

“연/연탄은행 분들, 탄/탄탄한 갑옷이 항상 지킬 거예요, 은/은빛나는 연탄은행! 행/행진할 거예요.” 백사마을 주민들은 이날 전을 부치고 국수를 삶아 땀 흘린 봉사자들과 함께 나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