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공의, 사랑, 동행

입력 2018-10-16 00:03

몇 년 전 추운 겨울날 당시 겨울방학이었던 아이들과 함께 젊은 요리사가 운영하는 가정식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영업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 많은 사람들은 추위를 감수하면서까지 이 음식을 먹고 싶어 할까?’ 제 답은 ‘젊은 총각 사장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진심을 다했고 결국 사람들이 그 정성을 알아줬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정 넘치는 사장님의 모습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진심과 정성을 다 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주전 8세기는 국외적으로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스라엘 민족 내부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도자들과 관리들의 타락이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동족이 어려울수록 더욱 공의를 행하고 공평을 행해야 할 사람들이 권력을 이용해 오히려 더 부정을 저지르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공의를 시행해야 할 주체들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 타락해 있는 모습은 현재 우리 시대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재물과 종교적 행위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무조건 좋아하실 것이란 오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열심은 도가 지나쳤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첫 아들을 바치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해 주실 것이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8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8절은 우리가 진심을 다해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아소트 미쉬파트’라고 하는데, ‘공의’로 번역되고 있는 ‘미쉬파트’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주로 재판, 판단이라는 단어로 번역되고 있고 법도 권리 규례 질서 법 기준 등으로도 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의는 단순히 우리가 옳은 일을 행했다라고 말하는 윤리적 옳음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성품인 ‘의로움’과 관계된 정의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을 위해 우리는 윤리적 ‘미쉬파트’를 행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결정하고 행동한다’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어적 표현으로 보면 ‘아하밧 헤세드’라고 합니다. 즉 헤세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헤세드’는 성경에서 총 248번 등장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주로 자비 인자 친절 선함 호의 긍휼 등으로 번역돼 있습니다. 헤세드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계약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언약이나 사회 속에서의 언약 혹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바로 이러한 언약의 사랑, 언약의 관계 헤세드를 지키고 사랑할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겸손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하츠네야 레헤드 임 엘로헤하’라고 합니다. 원어적으로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라는 말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공의를 행하고(미쉬파트), 언약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헤세드)은 바로 하나님과 겸손하게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본질에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함께 가자고 줄을 서게 될 것입니다. 공의를 행합시다. 사랑을 사모하십시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십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황인성 목사(공명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