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빈틈 파고드는 ‘이해관계자들’, 독일 프랑스는 연금 박탈

입력 2018-10-15 04:04
글 싣는 순서
<상> 로펌의, 로펌에 의한, 로펌을 위한
<중> 대형 회계법인의 ‘숨겨진 노다지’
<하> 로비 관행, 이대론 안 된다

퇴직한 공직자의 재취업, 전·현직 공직자 사이에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로비는 한국뿐만 아니라 주요국에서 뜨거운 논란거리다. 이에 미국의 정부윤리법처럼 각국 정부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규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법무법인(로펌)과 대형 회계법인 등 막강한 자본력, 월등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이해관계자’들은 끊임없이 법의 빈틈을 파고든다.

전문가들은 공직자윤리법 강화를 첫손에 꼽는다. 재취업 ‘사각지대’를 없애 꼼수를 차단하고, 공무원연금 박탈 등 사후 제재를 강화하자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대형 로펌·회계법인이 위상에 걸맞게 스스로 윤리·책임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 시행 중인 이해충돌 방지정책은 엇비슷하다. 미국은 1978년 정부윤리법을 제정해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 공직 임용 후 1년간 임용 전 고용주 관련 업무 배제 등을 강제하고 있다. 89년 윤리개혁법을 도입해 공무원 재취업을 일부 제한하기도 했다. 캐나다 역시 이해충돌법을 만들어 특정 상황에서 공직자의 결정 제한, 특혜제공 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도 81년 제정한 공직자윤리법을 통해 퇴직공직자 취업 제한, 재산등록·공개, 부정청탁 및 알선 금지 등의 규제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형 로펌·회계법인, 주요 정부부처 공직자들은 이 규정을 회피하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한다. 예컨대 각 부처는 퇴직이 예상되는 인력들을 2∼3년간 조직 내부관리 업무 등 취업 제한 규정에 걸리지 않을 보직으로 인사를 낸다. 로펌과 회계법인은 공직자 재취업 제한 매출액 기준을 피할 수 있는 소규모의 ‘새끼 법인’을 만들어 ‘공직자 모셔오기’에 활용한다(국민일보 10월 12일자 1·6면 참고).

결국 로펌과 회계법인이 저마다 만든 ‘이해충돌을 최대한 방지한다’는 윤리규정은 현장에서 무의미해진다. 특히 4대 대형 회계법인은 세계 유수의 회계법인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의 윤리규정을 준용하고 있지만, 윤리의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14일 “제도가 강화돼왔지만 실제 운영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자본금과 매출액으로 나눠 취업 제한 직장을 선별하는 제도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 변호사는 “취업 제한을 받는 직장을 단순히 열거하다 보니 민간 기업체가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소규모 법인을 만들어 우회적으로 공직자를 데려가는 편법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출액 등과 관계없이 퇴직공직자가 맡았던 업무와 얼마나 관련성이 있는지 등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심사하도록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명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퇴직공직자 취업 제한제도 개선방안’에서 “자본금 규모와 연간 외형거래액수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면서 정부조달계약 규모, 종업원 수 등 보다 다양한 기준을 추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재취업을 염두에 둔 비정상적 인사 관행도 바꿔야 한다. 퇴직이 예상되는 시점의 2년 전부터 순환보직 제한, 재직 기관별로 퇴직 후 일정기간 취업을 원천 금지하는 취업유예기간의 설정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취업제한심사제를 강화해도 공직자의 재취업을 아예 막기는 불가능하다. 퇴직공직자들이 민간에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막는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무작정 사전 규제의 ‘문턱’만 높일 게 아니라 사후 제재를 강력하게 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취업제한제도를 위반했을 때 공무원연금을 박탈하거나 삭감하는 독일 프랑스가 대표적 사례로 제시된다.

퇴직공직자의 로비를 아예 양성화하는 방안도 자주 등장하는 대안이다. 미국처럼 전·현직 공직자 간의 접촉을 합법화하되 로비 내용을 모두 기록·공개하는 식이다. 김 변호사는 “로비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로비를 양성화해서 감시·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로비를 부정부패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국민적 반감, 시민단체 반발 등을 넘기 쉽지 않다.

공직사회와 관련 민간 업계의 윤리의식을 높이려는 노력도 시급하다. 상명대 산학협력단은 보고서 결론에서 “어떤 대안이 도입되더라도 공무원의 행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예방적 차원에서 공직자 윤리교육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