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성장하니 다른 상급도 주어졌다. 신설 연합기관인 미주한인기독교총연합회 초대 대표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50여개 주의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자리였다. 사실 나는 교단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를 각 지역 연합회장들이 추천했다. 결국 이 직책을 맡게 됐다. 어깨가 무거웠다. 미주 한인교회 간 협력과 연합, 세계선교 활성화, 이단·사이비 척결, 심지어 한인사회의 각종 문제에까지 관여했다.
취임식 때 “연합회 대표회장을 명예로 생각하지 않고 멍에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낮은 자세로 교회와 이웃을 섬기겠다는 의미였다.
임기 중에 큰 사건이 발생했다. 1992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방화와 폭력, 절도가 횡행하는 무정부 상태가 된 것이다. 백인경찰들이 과속으로 운전하다 도망치던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을 붙잡아 마구 구타한 사건이었다.
이 일은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보도돼 흑인사회에 공분이 일었다. 하지만 법원은 폭행을 가한 백인경찰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인종차별과 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려 온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분노는 백인뿐 아니라 애꿎은 한국계 주민들에게도 향했다. 이 폭동으로 55명이 죽고 2000여명이 다쳤으며, 특히 한국계 주민들의 상점과 주택의 피해가 컸다.
흑인들은 한인들이 자기 마을에서 상점을 오픈해 돈을 벌면 큰 도시로 나가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차별대우를 한다고 했다. 미국 내 한인들의 입지와 생계를 넘어 생명까지 위협을 받았다. 과격한 한인들은 총을 구입해 맞대결을 하기도 했다.
미주기독교총연합회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당부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푯대로 삼았다.
다행히 흑인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이었다. 총 대신 하나님 사랑의 복음으로 접근했다. 폭동 며칠 뒤 연합회 임원과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흑인 지도자들을 만났다. 먼저 죄송하다고 했다. 또 흑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흑인 마을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부금을 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흑인들을 품은 것이다.
설득을 거듭했다. “비록 인종과 피부색은 달라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가 아니냐”며 끌어안고 기도했다.
흑인 지도자들은 한인 목회자들의 이런 행동과 도움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오! 하나님.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저희들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번엔 흑인들이 사과했다.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이 일로 한인과 흑인들은 차츰 가까워졌다. 정부나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교회가 나서 해결한 것이다. 하나님 사랑이 문제의 답이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