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실이 카쇼기 암살 지시” 파문

입력 2018-10-10 18:38
사진=AP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60·사진)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당한 사건의 직접적인 배후는 사우디 왕실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터키 언론은 부검 전문가까지 포함된 사우디 암살팀의 명단과 동선까지 공개했다. 터키 정부는 물론 사우디의 오랜 우방국인 미국도 사건의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터키 수사관계자를 인용해 카쇼기가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에서 내려온 명령에 의해 암살당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카쇼기 실종 당일 영사관에 출입했던 15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터키 정부는 카쇼기의 시신 훼손을 위해 부검 전문가도 동행한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친정부 매체 데일리 사바에 따르면 암살 용의자 15명은 지난 2일 항공기 걸프스트림-IV 2대에 나눠 타고 터키에 도착했다. 이날은 카쇼기가 터키인 약혼자와의 혼인신고를 위해 사우디 영사관에 들렀던 날이다.

용의자들은 영사관으로 향했고, 카쇼기가 영사관에 들어간 지 2시간30분 만에 다시 나와 검은색 밴을 포함한 차량 6대에 나눠 탄 채 180m가량 떨어진 관사로 이동했다. 관사 직원은 갑자기 그날 하루 쉬라는 지시를 받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터키 정부는 검은색 밴 안에 카쇼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일간지 사바는 용의자 15명의 얼굴과 이름, 나이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중동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도 이들 중 한 명은 사우디 내무부 산하 법의학부서 책임자이고, 3명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예전 경호원이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는 카쇼기가 무사히 영사관을 나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그가 영사관을 나가는 장면이 담긴 영상 등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점점 더 강하게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카쇼기 암살 의혹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전 세계 언론인에 대한 폭력은 언론과 인권에 대한 위협이다. 세상은 답변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카쇼기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워싱턴포스트의 최고경영자(CEO) 프레드 라이언도 성명을 내고 “카쇼기 행방에 침묵하지 말라. 우리는 진실을 알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도 이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인권담당 실무자는 “카쇼기가 무력에 의해 실종된 것은 매우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카쇼기 피살사건 이후 특히 사우디와 터키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카쇼기가 스스로 영사관을 떠났다면 이를 증명할 영상이 있을 것”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인 바 있다. NYT는 사우디 왕실이 카쇼기 암살 명령을 내렸다는 결론을 터키 정부가 내린 이상 두 나라의 갈등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