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퇴임한 A검사장은 변호사 개업 11개월 만인 지난 7월 ㈜한진의 법률자문으로 영입됐다. 당시는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이 총동원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탈세·배임 및 ‘갑질’ 의혹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진행할 때였다.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A검사장의 소속 기관과 한진그룹의 업무 관련성은 인정되지만 ‘취업을 승인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취업을 승인했다.
법무부 고위 간부였던 B변호사는 공직자윤리위의 취업 가능 결정을 받아 지난 2월 쏠리드와 팬택, 4월에는 한일시멘트 법률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일시멘트 법인은 시멘트 가격 담합 혐의로 지난 3월 기소됐다.
검찰 고위 간부들이 퇴직 후 기업의 법률자문이나 고문 자리로 재취업하는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갑윤(사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9일 법무부·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공직자윤리위의 취업 심사를 받은 검사장급 이상 고위직 출신 14명 중 11명이 사기업 법률자문·고문으로 취업했다. 나머지 2명은 기업 사외이사로, 1명은 법무법인으로 갔다.
2015년 3월부터 시행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일명 ‘관피아방지법’)은 검사장급 이상 검사의 경우 퇴직일부터 3년 동안 퇴직하기 전 5년간 소속됐던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 취업을 제한한다.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법무법인이 이에 해당돼 국내 주요 로펌으로의 취업이 사실상 차단됐다. 전관예우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리더라도 기업으로 재취업할 때는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심사를 받은 검사 출신 176명 중 96%인 169명이 취업 승인을 받았다. 공직자윤리위가 회의록이나 승인 결정 사유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법률자문·고문 직함을 얻은 퇴직 간부들이 변호사 고유 업무보다는 ‘친정’을 상대로 한 로비 창구 노릇을 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사내 법무팀 외에 경영진 수사 등에 대비한 우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전관 변호사들은 또 하나의 수입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을 수 있다.
2016년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 때 구속됐던 홍만표 전 검사장도 네이처리퍼블릭 법률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거액의 수임료 외에 매달 수백만원의 고문료를 따로 받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률시장 경쟁이 치열한 데다 공직자윤리법 강화로 대형 로펌 취업도 막힌 전관들에게 기업 고문변호사는 매력적인 자리”라고 말했다. 자문·고문직은 별도의 겸직 제한 규정이 없으며, 사외이사와 달리 해당 기업이 공시할 의무도 없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기업들이 일정 자문료 이상을 지급할 경우 전관으로서의 효용을 이용하려는 측면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검사 재취업을 법으로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수사·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의 업무 특성상 보다 엄격한 재취업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
[생각해봅시다] 법률고문? 관피아법 우회한 또 다른 전관예우 논란
입력 2018-10-1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