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자녀들의 논문 저자 등재가 연구부정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 대학 여러 곳에서 부실 검증 정황이 드러났다. 객관적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해당 교수의 진술만 믿고 ‘문제 없음’ 판정을 내린 대학들도 여러 곳 확인됐다. 논문에 핵심적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연구부정은 아니라고 판단한 대학도 있었다. 한 차례 심의만 연 뒤 “자녀의 연구 기여도가 인정된다”며 정식 예비조사나 본조사를 열지 않기로 결정한 곳도 많았다. 공저자의 이의 제기를 묵살한 대학까지 있었다.
연구부정으로 판명된 11개 논문과 유사한 사례가 연구윤리를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난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단순작업만으로는 저자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기존 연구윤리에 정면 배치되는 결정을 대학들이 내놓은 것이다.
국민일보는 9일 미성년 자녀 논문 저자 등록이 문제가 없다고 판정해 교육부에 보고한 뒤 보완조사 결정이 내려진 대학들의 결과보고서 문건 일부를 확보해 분석했다.
대구대는 자녀가 자료 수집과 엑셀 코딩만 한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고등학생 딸을 2편의 논문에 공저자로 올린 F교수는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딸이) 자료 검색·수집, 엑셀 코딩 작업에만 기여했다”고 인정했다. ‘(자녀가) 연구계획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석했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아니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F교수는 “연구실적등록 시스템에도 (딸의) 역할을 ‘보조원’으로 명시했다”며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책임연구자의 역할로 보조원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도 했다. 자녀가 저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교수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대구대 연구진실성위는 “대구대 규정에 따른 연구부정행위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서 정식 예비조사나 본조사를 열지 않고 심의를 마무리했다. 대구대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정리한 데이터가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는 그 학생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주저자가 아니라 공저자란 점을 고려할 때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일대 등은 단순작업만으로는 주저자는 물론 공저자로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통상 연구보조원이 수행하는 단순 행위는 저자 자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실험보조 이상으로 연구에 기여했고, 그 결과가 학술적·기술적 의미가 있다는 객관적 자료가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객관적인 자료 검증 없이 저자 자격을 인정한 대학 역시 많았다. 부산대는 자녀가 연구에 기여한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심지어 다른 공저자가 자녀의 저자 자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부산대 연구진실성위는 G교수가 고등학생 딸을 공저자로 넣은 논문 2편을 조사한 결과 “자녀의 학술적 기여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G교수가 문서편집기의 변경 내용 추적 자료, 논문 초안 및 수정본, 연구노트 등을 제출했지만 자녀가 실질적으로 기여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공저자 6명 중 3명만 자녀의 저자 자격에 동의한다고 했고, 1명은 “미성년 자녀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고, 전문성 문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나머지 2명은 위원들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산대는 “공동저자의 자격 부여와 저자의 순서 결정에 있어서 교신저자의 역할을 존중해주는 것이 학계에서 통용되는 관례”라며 ‘연구부정 아님’ 결론을 내렸다. 공저자의 이의 제기에 대해서는 “(해당 공저자가) 실험진행 단계 이후 연구원직에서 해고돼 논문 작성 단계에서 미성년 자녀의 역할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한국물리학회장을 지낸 한 교수는 “같은 학계에 있는 공저자가 이의를 제기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은데 검증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동의대는 지난 4월 한 차례 회의를 열고 H교수 건에 대해 연구부정 아님으로 결론 내렸다. H교수는 딸이 선행 연구 분석, 데이터 조사 수집 및 분석, 영어논문 작성 참여 등의 내용을 담은 경위서를 제출했는데 위원들은 “국제고 특성상 학생이 외국어에 능통하기에 연구에 도움이 됐을 것” “교복 착용 후 학술발표하는 사진이 확인된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으며 부당한 저자 표기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정해진 결론을 내리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낸 것 같은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대진대 동의대 부산대 등 일부 대학은 논문 투고·게재 시점이 대학 입학전형 시기보다 늦다는 점을 들어 자녀가 부당한 혜택을 보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사립대 입학처장을 지낸 한 교수는 “특정 학술지에 투고된, 혹은 투고할 예정인 논문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큰 ‘플러스알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검증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대학이 많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단독] 엑셀 작업만 해도, 공저자가 문제제기해도, 자녀 논문 저자 끼워넣기
입력 2018-10-10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