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술자리 불려갔다가 교통사고 사망 여성 공무원, 순직 인정 안됐다

입력 2018-10-08 18:22
공무원연금공단 전경.

퇴근 도중 상급자 술자리에 불려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산림청 공무원 A씨에 대한 공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았다(국민일보 3월 26일자 6면 참조). 유족들은 산림청의 ‘2문장짜리 순직 신청서’에 반발하며 인사혁신처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8일 산림청이 공무원연금공단에 제출한 순직 신청서에 따르면 중부지방산림청 소속 A씨는 지난 1월 18일 산림청 본부로 출장을 왔다. 그날 본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밤 12시가 넘어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산림청은 순직 신청서에 A씨의 회식 참석 경위, 강제성 여부, 회식에 참여한 상급자와의 관계 등에 대한 설명 없이 시간에 따른 행적만 정리했다. 모두 두 문장이다. 통상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 등을 적어내는 기관 소명 칸에는 ‘없음’이라고 썼다.

신청서를 받은 공무원연금공단은 A씨의 퇴근이 종료된 점, 공식 회식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공무와 관련이 없다고 결정했다. 산림청은 A씨 사고 직후에 ‘사적 모임’이었다는 이유로 유족들의 순직 신청을 거부했다가 언론 보도 이후인 지난 5월에야 순직을 신청했다.

유족들은 산림청이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지 않았다며 반발한다. 유족들에 따르면 A씨는 사고 당일 오후 6시20분 퇴근하다 상급자의 회식 참석 요청을 받았다. 시간이 촉박했던 그는 정부대전청사 인근 관사에 차량을 주차하고 바로 회식 장소로 향했다. 미리 주문했던 음식물 택배상자를 집에 들여놓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유족들은 이를 근거로 “아파트 개별 호실을 들어가는 순간을 퇴근 종료로 판단하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 A씨의 퇴근은 종료되지 않았고 회식 참여로 업무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또 유족들은 직속상관이 아니지만 본청의 상급자 3명이 부른 회식 자리를 단순한 사적모임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의 언니는 “지방청 7급이었던 동생이 본청 고위직이 포함된 회식 자리에 불려간 것은 충분히 강제성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미혼의 여성 하급자를 불러내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는 자체도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A씨는 새벽 1시15분에 술값 6만4000원을 계산한 뒤 먼저 귀가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유족들은 조만간 순직 재심사 청구서를 인사혁신처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순직 결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