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10일] 부드러운 사람

입력 2018-10-10 00:02

찬송 : ‘내가 매일 기쁘게’ 191장(통 42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0장 2∼9절


말씀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잠시 요한1서 2장 27절을 봅시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자들은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평생 채워지지 않던 결핍이 성령 안에 거한 뒤 치유됐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신이 차오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사라졌을 때 하나님 나라를 배우는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이런 배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질문은 함정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 12:14)라 묻는 경우와 같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요 8:4)란 질문과 흡사하죠. 딜레마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지혜로운 대답을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사랑하는 율법의 취지와 법정신을 통해 무지함을 깨우쳐 주시죠. “법이 만들어진 배경은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혼증서를 써줘서 여자를 버리기로 한 것이지 본래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이기에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완악함’의 헬라어는 ‘스클레로 카르디아’로 ‘굳은 마음’이란 의미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죽은 것은 딱딱해집니다. 밭을 둘러봤습니다. 김장을 위해 심어 놓은 배추가 잘 자라고 있더군요. 그런데 배추 잎에 구멍이 났길래 자세히 보니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벌레를 떼어내 손 위에 올려보니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배추밭을 좀 더 관찰했습니다. 하얗게 변한 벌레도 있더군요. 떼어내니 이미 딱딱합니다. 죽어서죠.

우리 마음도 죽어가는 건 아닐까요. 이미 죽어 완악해진 것은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처방, 바로 이혼증서라도 써줘서 여성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허락한 게 율법이지 본래의 부부생활은 둘이 한 몸 되는 거룩하고 완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딱딱한 마음이 풀어지고 회복돼 새살이 돋길 원합니다. 또한 부부가 늘 한 몸 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창조의 목적인 생육하고 번성하며,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쓰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식과 소양을 배우고 익히게 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신경질적인 질문을 하지만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지혜롭고 따뜻하게 가르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늘 하나 되는 부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김태웅 목사 (충주 은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