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교육 수준에 걸맞은 질 좋은 일자리 늘지 않아
다시 취업 준비 기간 늘리며 결혼·출산 연쇄적으로 늦춰져
실업→저출산 고리 끊으려면 첫 직장 잡는 시기 앞당겨야
정부, 비경제활동 기간 줄이고 일자리 미스매치 해결 나서야
한국 대학생들은 졸업을 사형선고마냥 두려워한다. ‘대학을 가야 취업한다’는 말에 뼈 빠지게 공부해 대학에 합격하고 졸업장을 받아들어도 취업의 문은 좁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몇 번을 휴학하고 졸업 논문을 내지 않으면서 졸업을 미루는 일이 보편화됐다. 2010년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해 2016년 2월 졸업한 A씨(28·여)는 “입사지원서를 쓸 때 ‘졸업자’와 ‘졸업 예정자’의 차이가 너무 커서 졸업을 미루는 일이 대학에선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4년제 대학에 들어가 딱 4년을 공부하고 졸업하는 이가 드문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4년제 대학생이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남성의 경우 평균 6년2개월, 여성은 4년4개월이다. 남성이야 군대가 걸려 있다지만 여성까지도 졸업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다.
이유는 휴학자 통계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통계청 통계를 재분석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청년의 노동시장 이행과 사회적 독립 과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 가운데 25.9%가 휴학을 경험했다. 휴학을 한 이들 중 32.5%는 취업시험 준비가 목적이라고 답했다. 어학연수(25.3%), 자격시험 준비(20.4%)를 꼽은 이들도 많았다. 모두 취업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한 통과의례다. 휴학을 경험한 여성의 경우 평균 1년 하고 4.4개월을 쉬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따로 더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졸업 후 남성의 경우 평균 1년, 여성은 10개월 정도가 취업에 걸린다.
왜 한국 사회는 이토록 취업을 하는 여정이 길고 험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과잉학력(over education)’을 꼽는다. 특수목적고등학교 양성 정책이 보여주듯 한국의 교육제도는 고학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에 부모의 교육열이 불을 지핀다.
이는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닌 청년층(15∼29세)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왔다. 1970년만 해도 청년층 가운데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사람은 42.4%나 됐다. 전문대학 졸업은 1.6%,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은 5.3%에 불과했다. 40년이 지나면서 학력 인플레 현상이 일어나며 2010년 전문대 졸업자와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인 사람을 합친 비중은 60.7%까지 치솟았다.
반면 높아진 교육 수준에 비례해서 질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았다. 이 격차는 질 낮은 일자리에 청년층을 내모는 현상을 불러왔다. 문제는 청년들이 ‘취업 절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취업준비기간을 늘리면서 국가의 근본적 경쟁력이 잠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졸업과 취업, 결혼이 다 늦어지는 바람에 출산이 미뤄진다. 이른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노동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취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인하는 사례는 조사 대상의 2%도 되지 않았다. 취업이 늦어지면 결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1960년 남성은 평균 25.4세, 여성은 21.6세에 결혼했다. 현재는 남녀 모두 결혼 연령이 평균 30세를 넘어섰다.
만혼은 첫 출산 연령이 늦어지는 흐름과 직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3년 26.2세였던 여성의 평균 첫 출산 나이가 2010년 30.1세까지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평균 31.6세 첫 아이를 낳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자리를 잡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 시기가 늦어지다 보니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출산율(1.05명)은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첫 직장을 잡는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현재 정부가 ‘취업성공패키지’ 같은 청년 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고학력인지 아닌지 등을 따지지 않고 평준화한 게 문제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갈수록 길어지는 청년층의 비경제활동 기간을 어떻게 줄이고, 중단시킬지를 정부가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학력지상주의-> 과잉 학력->미자립…’ 악순환 끊어야 ‘청년 실업’ 숨통
입력 2018-10-0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