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환자가 지하철에… 출근길 ‘감염 열차’ 아찔

입력 2018-10-04 19:46 수정 2018-10-04 21:55

병원 치료를 받던 결핵 환자가 지하철에 탑승해 출근하던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리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입원치료를 받던 이 환자는 12시간 동안 병원 밖을 돌아다니다 지하철에서 발견된 것으로 드러나 전염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4일 오전 8시18분쯤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행 경찰병원역에서 환자복을 입은 A씨(57)가 지하철 객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본 한 시민이 교통공사에 신고했다. 대청역에서 하차한 A씨는 출동한 교통공사 직원에게 스스로 결핵 환자라고 밝혔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검사를 실시했다. 오전 8시58분쯤 A씨가 활동성 결핵 환자인 것이 확인되자 교통공사는 곧바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해당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열차는 소독을 위해 회송됐고 A씨는 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노숙인인 A씨는 경기도 성남에서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결핵 특화병원인 서울 은평구의 서북병원에 지난달 19일부터 입원해 있었다. 개방병동에 있던 그는 3일 오후 8∼9시쯤 간병인에게 “병원 2층에 있는 공중전화를 쓰고 오겠다”며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 측은 A씨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자 오후 11∼12시 사이 ‘질병보건 통합관리 시스템’에 보고를 올렸다. 질본이 운영하는 이 시스템에는 전국 결핵 환자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A씨는 병원을 나온 뒤 12시간 동안 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소주병 20여개를 주워 팔아 샌드위치를 사먹고 지하철역에서 잠이 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에 따른 인지장애로 이동경로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했다.

이번 경우 A씨가 스스로 감염 사실을 밝혀 조치를 빨리 취할 수 있었지만 감염병 환자 관리에 대한 구멍은 확인됐다. A씨가 간밤에 배회한 경로도 추적하기 어렵다. 보건 당국은 새벽에 소주병을 줍던 A씨에게 가까이 다가가 접촉한 행인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염병 환자의 대중교통 탑승을 제재할 법적 근거 역시 마땅치 않다. 결핵관리법 등 현행법은 ‘결핵 환자가 업무·등교에 일시적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지만 대중교통이나 공중시설 이용에 대한 내용은 없다.

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의 ‘여객운송 약관’에 따르면 ‘다른 여객에게 위험 등의 피해를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경우’ ‘감염병 감염·의심환자로 지정돼 격리 조치를 받은 경우’ 탑승 거부가 가능하지만 이도 무용지물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약관에 탑승 거부 조항이 있더라도 환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감염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A씨처럼 2주 정도 치료를 거치면 전염성이 80∼90% 소멸돼 전염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치료받은 적이 없는 감염 환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문제는 더 커진다. 질본 관계자는 “치료에 응하지 않거나 입원을 거부하면 입원·강제입원 명령을 내려 격리시키기 때문에 전염성을 가진 환자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일은 흔치 않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