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436장(통 49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무엘상 22장 1∼2절
말씀 :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까지 도망갑니다. 가드는 골리앗의 고향이었으니 다윗을 달가워할 리 없겠죠. 다윗은 미친 척합니다. 용맹스럽던 다윗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행동이었죠. 그렇게라도 목숨을 구걸했지만 아기스는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미치광이라 비난합니다. 그 말이 다윗의 마음에 꽂힙니다. 사울이 악령에 빙의됐을 때도, 사울이 다윗을 시기해 창을 던질 때도 ‘난 사울처럼 미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다윗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소릴 들은 겁니다. 다윗은 발길을 돌려 아둘람 굴로 향합니다. 풀 한포기 없는 지형입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동족에게도, 적군에도 생명을 의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드십니다. 모순과 딜레마에 빠지게 하시죠.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온 모세도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자리했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그때 살길은 위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몰아넣은 하나님은 구원은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다윗의 아둘람 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스에게도 갈 수 없는 처지를 만드시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리로 몰아가신 겁니다. 다윗 스스로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가 됐습니다. 아무도 찾는 이가 없습니다. 개미 한 마리 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때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그에게 이릅니다. 골리앗의 목을 베었을 때도 안 오던 가족들입니다. 하지만 그가 가난해지니 찾아옵니다. 왜일까요. 가난한 자리가 정직한 자리여서입니다. 정직해질 때 사람들의 마음이 고이게 됩니다. ‘사랑하다’의 우리말 중 ‘고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난해졌을 때 가장 먼저 고이는 건 바로 가족들입니다. 모든 일이 잘될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호세아의 말씀처럼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는”(호 2:15) 분이십니다.
가족과 친척이 회복됩니다. 그러자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듭니다. 짧은 생애를 살며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권력자들이 괴롭히면 나도 더 약한 사람을 찾아 괴롭히면 되고, 허영심 가득하게 살아도 되고, 원통하면 돈으로 위로삼고 쾌락에 몸을 맡겨버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400명이 다윗의 소문을 듣고 그를 찾은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은 갈등과 모순 사이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는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애굽 군대와 홍해 사이로 길이 났고 생명의 움이 튼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 믿는 자들에게 늘 새로운 것, 희망을 주십니다.
기도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사이로 샛길을 걸어 좁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김태웅 목사(충주 은혜교회)
[가정예배 365-10월 7일] 새로운 사람
입력 2018-10-05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