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뗐던 기저귀 다시 차고 밤마다 악몽 꾸는데…”

입력 2018-10-04 04:04

어린이집 학대의 경우 대부분 CCTV 사각지대서 발생함에도
관할구청, 영상에 찍힌 학대 경미하다며 행정처분 미뤄
폭염 때 차량에 어린이 방치한 새로운 학대 정황도 제기돼
피해아동 부모들 변호사 선임 檢에 영상 확보 등 요청 진정서
한 부모 “두 달새 10kg 빠지고 정신과 치료 받고 있다” 호소


보육교사 2명이 아동 9명을 학대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인천 남동구의 한 어린이집이 버젓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 관할 구청인 남동구는 CCTV 영상에 중대한 학대 행위가 찍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미루고 있다. 지난여름 아동을 어린이집 차량 안에 방치하는 등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이 피해 아동과 가족들은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3일 인천 남동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8월 해당 어린이집에 근무하던 보육교사 2명이 지난 5∼7월 아동 9명을 학대했다고 수사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어린이집 원장도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조치를 하지 않고 다른 교사들을 입단속시킨 혐의(관리감독 소홀)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인천 남동구는 해당 어린이집에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어린이집 CCTV 영상에 찍힌 학대 행위가 경미한 수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남동구 관계자는 “영상엔 머리를 툭툭 치거나 팔을 잡아당긴 모습만 담겼다. 크게 상해를 입은 게 아니라서 검찰 기소나 법원 판결까지 기다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행정처분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학대 행위 확인 등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재량 범위 내에서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중대한 학대 행위 대부분이 CCTV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피의자 A교사가 CCTV 사각지대에서 아동의 목을 조르거나 이불을 뒤집어씌워 찼다고 본다. A교사와 함께 일했던 한 교사는 “A교사는 귀신같이 CCTV 위치를 알고 사각지대로 먼저 간 다음 아이를 그곳으로 불렀다”고 진술했다. CCTV 영상에도 A교사가 사각지대로 간 후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동이 뒤따라가는 장면들이 잡혔다. 이어 나머지 아동이 일제히 사각지대를 보며 무서워하는 모습이 담겼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나는 학대 사실을 몰랐다. 어린이집은 행정처분 없이 계속 운영될 것”이라고 꾸준히 공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아동 어머니 김모(35)씨는 “네 살 아이가 아동학대 이후 다시 기저귀를 차고 밤마다 악몽을 꾼다. 그런데도 어린이집이 정상 운영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다른 아동의 어머니 박모(36)씨는 “원장이 교사들한테 ‘학대 행위가 사각지대에서 찍혔으니 무혐의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증언하지 마라’고 압박한다고 한다. 우리 편에 섰던 교사 2명이 잘렸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들이 심리치료를 받는 중 새로운 학대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부모의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달하고 있다. 김씨는 “한창 더웠던 7월에 A교사가 우리 아이를 10분간 차량에 방치했다는 걸 다른 교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경찰에 이런 사실을 말했지만 ‘검찰에 사건이 넘어갔으니 그쪽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얻었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피해 아동 부모 10명은 결국 지난달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검찰에 추가 혐의 사실을 수사하고 CCTV 영상을 확보해 달라는 진정서를 넣었다.

김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도 ‘어린이집 학대는 주로 CCTV 영상에 잘 안 잡히기 때문에 검찰로 송치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더라. 이러다가 학대 교사와 원장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끝날까봐 매일 잠도 못 잔다. 두 달 새 몸무게가 10㎏ 빠졌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아동학대 사건 발생 이후 부실한 행정조치는 고질적 문제다. 감사원이 2016년 과거 3년간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사항을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를 저지른 보육교직원 24명이 행정처분을 받지 않았다. 감사원은 “보육교사 자격정지는 재판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자격 취소와 달리 고의·중과실 요건만 충족되면 이뤄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행정소송 발생 등을 우려해 처분을 미룬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책임질 일을 만들기 싫어 CCTV 영상에만 의존하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자세가 2차 피해를 만든다. 경찰 수사 결과나 증인 진술을 바탕으로 행정기관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정희 경북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발생 시 원생을 바로 옮길 수 있는 곳이 부족하다보니 구청도 머뭇거리게 된다. 국가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