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유은혜(사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내년 고교 무상교육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유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유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공식화했다. 대통령이 힘을 싣자 교육부는 내년 시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3일 교육계에서는 인사청문회에서 난타당한 ‘유은혜 구하기’ 성격이란 해석이 나왔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는 옹호론도 존재하지만 또다시 정치가 교육을 정치에 활용한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고교 무상교육은 박근혜정부도 추진했다가 포기했다. 재원 조달 방안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 무상교육을 시행해 입학금과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비를 국가가 지원하려면 학년당 6000억원, 1∼3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하려면 한해 2조원 가량 추가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제출받은 재정소요 추계 자료를 근거로 고교 무상교육이 실시될 경우 처음 5년 동안에만 총 7조8411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무상교육 지원 항목은 입학금과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용 도서 구입비다. 지원액은 2020년 6579억원, 2021년 1조2685억원, 2022년 1조9136억원, 2023년 1조9664억원, 2024년 2조347억원으로 매년 늘어난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해법은 지방교육재정교부율 조정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은 내국세의 20.27%로 고정돼 있다. 내국세 100원이 걷히면 20.27원을 시·도교육청 등에 내려 보내 교육비로 쓰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이 비율을 높여 시·도교육감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줘 고교 무상교육을 실현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원래 로드맵대로 2020년 도입이었으면 야당, 기획재정부, 시·도교육청 등과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내년에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안에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설득이 녹록지 않다. 기재부는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 교육 예산을 늘리는 것에 부정적이다.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복지예산이 많이 필요해지는데 교부율을 올리면 예산 운용의 경직성이 강화돼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법도 바꿔야 한다. 여권은 고교 무상교육이 박근혜정부 때도 추진했던 정책이었기 때문에 야당이 극렬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유 부총리 임명 강행 등 국회 상황은 언제나 변수가 많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우선 시·도교육청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다수 교육감이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고교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걸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울 대전 대구 경북을 뺀 나머지 13명의 교육감이 고교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부율 인상과 같은 당근 없이 부담을 떠넘기면 누리과정 예산 파동 때처럼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고교 무상교육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뚫어야 한다.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은 이미 무상으로 고교를 다니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고교생과 그 가정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실상은 ‘괜찮은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 혜택이 돌아간다. 한양대 교육복지정책중점연구소의 2014년 조사를 보면 기업들이 직원 고교생 자녀 학비를 지원하는데 한 해 4143억원을 썼다. 공공기관 재직자 자녀 학비로는 777억원이다.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면 기업 입장에선 돈이 절약된다.
학부모들이 고교 무상교육으로 굳은 돈을 사교육비로 쓸 것이란 관측도 있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 2월 ‘학부모 대상 고교 무상교육 정책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고교 무상교육에 찬성한 학부모 47.9%가 이렇게 답했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고교 무상교육, 한해 2조 예산 확보가 관건
입력 2018-10-04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