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련 감염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다. 이를 예방하는 일차적 방법은 ‘재사용 의료기구의 소독과 멸균’이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인력 부족, 수가 등의 문제로 재사용 의료기기 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재사용 의료기기 사용률이 높은 편이지만 소독과 멸균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 감시 체계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자의 감염 문제가 운에 맡겨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국회의원은 지난 9월 14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쿠키건강TV와 함께 ‘의료기구 멸균 실태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환자안전·감염관리를 위한 재사용 의료기구 관리방안을 모색했다.
김승희 의원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대구의 한 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70대 여성이 20일 만에 ‘패혈증’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8년에는 무릎 인공관절 삽입술을 받은 환자의 수술 부위에 슈퍼박테리아가 감염된 사고가 발생했다”며 “수술기구, 내시경, 임플란트 등 환자의 몸을 침습하거나 점막, 손상된 피부에 접촉하는 ‘재사용 의료기기’는 완전한 멸균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환자의 치료를 돕는 의료기기는 ‘감염의 매개체’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수술 현장에서 시간이 부족하거나 수가 등의 문제로 재사용 의료기기의 멸균 확인절차 누락 등 처리가 미흡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라며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재사용 가능 의료기기 목록과 재처리 방법, 재처리 시설 허가·관리 등 내용을 담은 법적 규정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병원 내 지침에 따라서 멸균이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재처리란 사용한 기구를 다른 환자에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세척, 기능확인, 소독, 포장 및 멸균, 멸균확인 과정을 말한다.
김 의원은 “의료기관에서 감염과 관련한 부분을 각 단계마다 철저히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대로 관여하기를 바란다”며 “또 현재 재사용 의료기기의 재처리에 드는 모든 비용을 의료기관이 부담하고 있는데, 충분히 멸균까지 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도 반영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수술기구 재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 인력을 구축하고 수술실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수술실 감염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강중구 대한외과감염학회장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15개 병원 조사 결과, 병원 내 감염은 총 2345건이 발생했고 그중 수술부위 감염이 38%(882건)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 수술부위 감염은 미국에서만 연간 15∼30만 명이 발생하고 있고, 전체 사망원인의 3∼5%를 차지한다.
강 회장은 “수술부위 감염은 재원기간과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환자의 경우 장애가 발생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며 “수술칼, 수술가위, 집게 등 수술 시 사용되는 다양한 기구들은 일회용 소모품을 제외하고 모두 재사용된다. 수술실 안전을 위해 이러한 재사용 의료기구가 제대로 재처리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세척 및 멸균을 위한 장비들이 모두 고가이고 기구와 멸균 방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또 진료과마다 특성 차이가 너무 벌어지고 있다”며 “따라서 (세척 및 멸균에 대한)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하다. 수술감염 감시를 위한 외과전문 인력이 감염관리실에 필요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수술실 환경 개선과 환자 안전을 위해 ‘수술실 안전관리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여기구에 대한 관리 방안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대여기구란 응급 또는 계획된 수술절차를 위해 판매자에게 대여한 기구다. 기구 공급업자나 다른 의료기관과의 대여 계약에 의해 의료기관이 소유하지 않고 빌려온 의료기구를 의미한다.
강 회장은 “대여기구 관리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기구의 세척, 소독, 멸균 지침만 존재하고 의무화된 업체의 기구 관리 프로그램이나 대여기구 관리 통제 시스템은 없다”며 “병원 수술실 내 관리 지침도 없다. 제대로 된 세척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국가정책으로 대여기구 관리 컨트롤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병원에서 어떤 환자가 사용했는지 추척관리 시스템과 세척멸균을 위한 시간 확보, 검수를 할 수 있도록 수술기구의 목록확보, 세척 멸균의 제조사 지침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인 병원중앙공급간호사회 기획이사는 ‘사용된 의료기구 재처리의 중앙화’를 주장했다. 사용 후 반납, 오염제거, 준비·포장 및 멸균, 보관·공급, 재사용 등 재처리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중앙공급부서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술부위 감염 예방을 위한 국제 지침에 따르면 모든 재처리할 기구는 환자를 시술하는 구역이 아닌 오염제거를 위한 구역이 별도로 마련된 중앙공급실에서 재처리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복지부가 의료관련 감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의료기기 멸균 후 결과 확인을 하지 않은 의료기관은 35.3%였다. 2013년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병원의 물품 혹은 자원 부족, 인력 부족 등을 올바른 멸균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혔다. 그러나 지난해 전국 160개 의료기관 중앙공급실 운영 현황조사 결과, 중앙공급실에서 수술기구 멸균 업무를 전 과정 시행한 의료기관은 33.1%에 불과했다. 일부만 시행하는 기관은 40.6%였다.
김 이사는 “의료기구나 물품의 올바른 소독과 멸균은 감염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다”라며 “의료기구 재처리 업무의 탈중앙화 현상을 개선하려는 단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이선영 병원수술간호사회 정보이사는 멸균과정을 준수할 수 있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이 이사는 “가이드라인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환경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멸균확인까지 하려면 최소 6시간이 소요되고, 비용과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멸균과정을 준수하기 위한 수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안 대표는 “그동안 수술실 감염과 관련해 정부와 여러 일을 해왔는데 거대 담론이었을 뿐 정작 안전 최전선에 있는 의료기구 재처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으며, 오 기자는 “복지부가 작년 12월까지 개별 의료기관의 대대적 소독·멸균 현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는데,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재사용 의료기구 재처리를 잘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감시하는 전담부서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정은영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기구 재처리에 대한 점검은 매년 하고 있다고 해명하면서 지원보상에 대해 급여과와 적정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의료기구 재처리를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시행조치, 행정처분은 매년하고 있다. 올해 초 멸균확인 준수사항을 미시행한 의료기관의 행정처분은 10건 이상이었다”며 “다만 점검과 처분은 지역 보건소에서 하고 있어, 지자체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지원보상에 대해서는 급여과와 적정성을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현재 의료기구 재처리 관리감시 보상에 대한 체계를 만들기 위해 검토 중이나, 현장에서의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현장 의견조회를 더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학회에서 마련한 가이드라인 잘 검토해서 실효성 있는 계획을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실태점검도 하려고 한다. 특히 생물학적 지표에 따라 멸균확인까지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의료기관에 재차 강조하려고 한다”며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된다.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멸균확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과정에 대한 의료기관의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의료기기 세척·멸균 전문인력 필요… 재처리 지원 확대를”
입력 2018-10-07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