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흘러간다. 사라질 역사를 붙잡는 건 사람의 몫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고 기록할지도 사람에게 맡겨진 일이다. 사가(史家)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삶의 자리’ 또한 의미 있다.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산장신대 교수인 저자는 부산에 가서야 새로운 선교역사를 보게 됐다고 고백한다. 서울 출신인 저자에겐 고작 미국북장로교(UPCUSA)가 남긴 흔적들이 선교사의 전부였다. 하지만 부산에 와서 기존의 상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완전히 새로운 선교역사를 맛봤다. 한국 기독교의 중심이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 책은 부산에 서서 바라본 선교역사의 궤적을 좇는다.
서문에서부터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다’는 명제를 던진다. “교회의 공적 기록에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많은 전도부인들이 바라보는 복음전도의 역사와 소수의 제한된 남성 교회 지도자들이 보는 역사가 동일할 수는 없다. 역사는 철저히 주관적이며,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추억은 동일하게 기록될 수 없으며 다르게 적힐 수밖에 없다.”(4쪽) 출발부터 ‘부산’이라는 안경을 쓰기로 작정한 셈이다.
새 안경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찾아냈다. “찬송 ‘멀리 멀리 갔더니’(387장)에는 부산에 정착했던 애니 베어드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복음 선포를 위해 조선으로 ‘멀리 멀리’ 왔고 임신 7개월인데도 순회 전도를 위해 집을 나선 남편 베어드 선교사를 ‘멀리 멀리’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힘든 삶 속에서 큰 위로를 준 사랑하는 딸 낸시 로즈도 하나님 곁으로 ‘멀리 멀리’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녀가 작시한 찬송 ‘멀리 멀리 갔더니’에는 그 아픔이 신앙고백으로 승화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22∼23쪽)
저자는 알렌이 조선에 온 날을 1884년 9월 14일로 못 박았다. 그동안 이날은 그가 중국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떠났던 날로 알려져 왔다. 저자는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찾아낸 알렌의 자필일기에서 이날 부산에 도착해 편지를 쓰던 알렌의 흔적을 캐냈다.(35쪽) 부산에 서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감춰진 역사였다. ‘부산에서 시작하는 하디의 부흥 이야기’ ‘부산을 위해 헌신한 호주 선교사들’ ‘이단의 요람 부산’ 등 책의 곳곳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부산의 선교역사가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부산에서, 새로운 선교 역사와 마주하다
입력 2018-10-0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