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경제를 요약하는 단어는 ‘호황’이다. 과거 침체기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기업 흥망성쇠의 가늠자인 ‘설비투자’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달 3일 발표한 통계를 보면 올해 2분기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 대비 12.8%나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설비투자가 단행됐다. 대표적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의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고 있어 기업이 투자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활발하게 투자를 하니 고용도 뒤따른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 8월 취업자 수는 6682만명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109만명이나 증가했다.
이와 달리 한국의 취업 시장은 춥다. 취업자 수 증가폭은 초라하다. 8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9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일자리 실종’은 기업의 ‘투자 절벽’과 무관치 않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4% 감소했다. 지난 3월 감소세로 돌아선 뒤 6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 9월부터 98년 6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한 이후 20년 만에 최장 기간 감소 흐름이다.
기업 설비투자 추락의 중심에 제조업이 서 있다는 점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주력 엔진이기 때문이다. 8월만 놓고 보면 특수산업용 기계를 포함한 기계류 투자는 3.8%나 줄었다. 지난 3∼4월에 대규모 반도체 설비투자가 마무리됐기 때문에 향후 반전의 기회를 노리기도 어렵다. 기업의 미래 기대치를 보여주는 지표인 경기선행지수는 전월 대비 0.4포인트 하락했다. 3개월 연속 떨어지고 있다.
설비투자 감소는 사업 기회가 있어도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경우, 사업 기회가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경우로 나뉜다. 안타깝게도 한국 경제와 기업이 처한 상황은 후자에 가깝다.
공장이 얼마나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5년 74.4%에서 지난해 72.6%로 내려앉았다. 지난 3월 70.3%까지 떨어진 뒤 등락을 반복하며 조금씩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70% 초중반대에 머물고 있다. 기존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도 다 팔지 못하는 형편이니 추가로 설비투자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근본적으로 산업경쟁력이 저하되는 게 문제”라며 “기술 추격을 당하는 산업군의 경우 투자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끼어든다. 중소·중견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고, 활발한 연구·개발(R&D)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탈 수 있는 환경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재 상황을 엄중히 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중소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시급히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혁신성장을 위한 생태계 조성 등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투자 절벽’ 한국경제, 멈춰가는 ‘성장 엔진’
입력 2018-10-03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