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바울의 간구

입력 2018-10-04 00:02

사도 바울과 빌레몬 오네시모는 영적인 삼각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관계의 시작은 골로새 지역의 유지였던 빌레몬의 집 노예 오네시모가 주인을 배반하여 도망하고, 로마로 가서 감옥에 갇힌 바울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어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고, 그 결과 오네시모가 예수를 영접하고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를 본래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서를 썼습니다. 간곡한 심정으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고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이방 교회들에 있어서 사도권(使徒權)을 갖는 절대적인 권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를 가지고 빌레몬에게 강권적으로 명령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연장자(9절)이고 또 동역자(17절)임을 말하면서 간곡히 부탁할 따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무릇 교회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이들이 성도들을 권면하고 교훈함에 있어서 강압이나 권위적인 힘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인께서 겸손하셨는데 그분의 종에 불과한 우리가 교만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할 때에는 이른바 ‘카리스마 리더십’이라는 것이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참 지도력이요, 덕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말 한마디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우리 모두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섬김의 리더십, 겸손의 리더십을 삶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도 섬김과 겸손의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종인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님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오네시모를 봅니다. 목회자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이 확실한데, 유일하게 못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왜 이처럼 하지 말아야 할 농담이 나왔을까요. 그만큼 사람이 변화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사례들을 찾을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본래 속이고 빼앗고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형제도 안중에 없는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다듬으시고, 변화시키셔서 위대한 믿음의 조상 중 한 명으로 세우셨습니다.

빌레몬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도 야곱 못지않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그만큼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한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다메섹 도상으로 찾아가 만나시고, 변화시키셔서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오네시모도 그렇습니다. 그의 이름 뜻은 ‘유익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기 이전에는 모두에게 무익한, 즉 이름값을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이후에는 사도 바울에게도, 옛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섬기는 교회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의 형제와 자매들 앞에서 유익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몬 1:11∼20)

이양로 동두천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