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동엽] 이윤을 말하지 않는 기업

입력 2018-10-03 04:02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극대화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최근 깨지고 있다. 그것도 21세기 시장경제의 꽃이라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의해서다. 현재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구글, 아마존, 애플 등에서 ‘이윤 극대화’라는 표현은 들어보기 힘들다. 21세기형 기업가의 대표 격인 스티브 잡스는 평생 ‘이윤’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가 찾아본 잡스의 어록에서는 이윤이라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나는 이윤을 위해 사업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윤이 아니라면 21세기형 기업들은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이윤을 대체하는 21세기형 기업들의 핵심 화두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다. 이들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고객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풀리지 않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기대되는 이윤이 크지 않더라도 가치 창조 가능성이 높으면 과감하게 도전한다. 이윤은 가치 창조의 결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마존이나 구글을 보면 이익 규모는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데 비해 새로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이나 신사업에 대한 투자는 천문학적이다. 구글의 경우 수익 창출을 담당하는 광고사업과 가치 창조를 담당하는 연구개발 중 후자가 단연 중심이다. 단기적으로는 아무런 이윤도 창출하지 못하고 비용만 써대는 코스트센터지만 구글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연구개발자들이 광고사업 담당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벌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가치 창조가 21세기형 신생 기업들에서 유독 강조되는 것은 현재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 때문이다. 세계화, 기술 혁신 가속화, 경계 파괴와 융복합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경영 환경이 극도로 복잡 모호하고 격변하면서 기존 사업과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방어하는 데 집중하던 20세기형 경영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끊임없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를 개방적으로 남보다 먼저 최초로 만들어내는 ‘무경계 상시 창조적 혁신’이 21세기 경제의 새로운 게임 규칙이 된 것이다. 이들은 현재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것은 물론 저소득층처럼 과거에는 비고객이던 집단들을 계속 고객화함으로써 잠재 고객의 가치도 창조한다. 현재 고객과 잠재 고객의 합이 곧 전체 사회이므로 이들은 사회 가치 창조를 강조하며, 그 결과 끊임없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통해 경제 성장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된다. 바로 이것이 신경제, 창조경제, 지식기반경제, 혁신기반 성장 등으로 불리는 21세기형 성장이다.

최근 우리 정부들이 혁신성장이나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런 역사적 대변동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정권 창출을 위한 구호로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지표가 괜찮은데도 계속 우리 경제의 위기설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 기업들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의 창조(value creation)’ 없이 기존 ‘가치의 포획(value capturing)’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20세기 방식으로 단기 성과는 유지하고 있으나 이런 게임은 빠르게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빠른 추격자’ 모델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따라잡기에 성공했을 때의 전략도 선진국들의 시장을 싼 비용으로 잠식하는 가치 포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기존 ‘성공 방정식’이 21세기 환경이 요구하는 가치 창조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의 덫’이 되고 있다. 100년 만의 대전환기를 맞아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는 우리 리더들이 현 환경의 역사적 특수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적시에 달성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