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A씨(82)가 몰던 준중형 차량이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한 약국으로 돌진했다. 사고로 약국 한쪽의 유리벽과 진열장이 손상됐고, 손님 한 명이 유리파편을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7월 30일 밤 B씨(70)는 경남 합천군 신평교차로 인근에서 자신의 SUV를 몰고 역주행을 하다가 마주오던 경차를 들이받았다. B씨는 경미한 부상을 입었지만 경차에 타고 있던 어머니와 세 딸이 모두 중태에 빠졌다.
A씨와 B씨는 모두 음주 상태가 아니었고,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둘은 경찰조사에서 “순간 판단이 흐려졌다” “역주행을 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진술을 했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자발적 면허증 반납을 독려하고 있지만 참여자는 매년 수천명 대에 불과해 유의미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 연령 이상에서는 인지기능 검사를 강화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08년 1만155건에서 2017년 2만6713건으로 약 2.6배 늘어났다. 고령자 교통사고 발생 건수도 2008년 2만3012건에서 지난해 3만7555건으로 61.3% 증가했다. 도로교통공단 우진구 홍보처장은 “특히 75세 이상 고령층은 중앙선침범, 신호위반, 교통로 통행방법 위반사고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반면 자발적 면허 반납자 수는 2014년 1089명, 2015년 1433명, 2016년 1942명에서 지난해 3691명으로 소폭 늘고 있긴 하지만 고령운전자 수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다.
이 같은 구조는 생계와 맞닿아 있는 영업용 차량의 고령화 문제와도 연계돼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사업용 택시 운전자 26만8600여명 가운데 65세 이상 운전자는 27.1%인 7만2800명(지난 7월 기준)이다. 2006년 당시에는 택시 운전사의 3.2%(20만6784명 중 6690명) 정도만 고령자였다. 고령자 비중이 9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은퇴 후 일자리가 막막한 고령자들로서는 운전대를 놓기 힘든 구조가 계속되는 셈이다.
서울의 법인택시 기사 박모(71)씨는 “나이가 많아도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운전기능에 큰 무리가 없는 기사들이 상당수”라며 “자발적으로 밥벌이 수단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운전을 제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운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제재 대신 건강 검진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조진성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인지기능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제도를 갖춰 건강이 입증되는 고령자는 운전할 수 있도록 하고, 이상이 감지된 경우에는 운전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미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교수는 “뉴질랜드는 운전자가 80세가 되면 자동으로 면허를 말소하고 2년마다 재시험을 치르도록 한다”며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에 대한 필요인식이 사회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고령운전자 사고 느는데… 무방비 면허 정책
입력 2018-10-0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