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없는데 할 일은 없고, 돌봐야 할 가족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다. 고독사도 걱정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인의 날(2일)을 맞아 펴낸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드러난 2018년 대한민국 노인의 현실이다. 노인 10명 중 4명꼴로 ‘생계 곤란에도 국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고독사가 염려된다’는 우울한 답변을 내놨다.
인권위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65세 이상 노인 1000명과 19∼64세 청·장년층 500명을 대상으로 노인인권 인식 및 경험 등 노인인권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인권위가 자체적으로 노인인권 관련 보고서를 낸 건 처음이다.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노인은 전체의 35.5%였다. 당장 생계가 곤란해 국가의 지원을 원하지만 받지 못한 노인도 24.1%였고, 노후 생활에 필요한 만큼 공적연금을 받지 못한 노인도 30.7%나 됐다.
하지만 노인들은 노후준비를 위한 경제적 활동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노인들은 ‘나이제한으로 취업이 어렵다’(58.6%)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은퇴했다’(61.2%) ‘노인에게 적합한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없던 경험이 있다’(48.1%)는 답을 했다. 노인 빈곤을 예방하거나,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71.1%에 달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반려자나 부모를 돌보는 문제에도 매여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57%는 ‘가족 내 65세 이상 노인가족을 돌본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들 중 28.2%는 ‘노인 가족을 돌보느라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다’고 답했고, 26.6%는 ‘노인 가족원을 돌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고 응답했다. ‘노노(老老)돌봄’ 문제는 현실인 셈이다.
열악한 환경은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줬다. 노인 4명 중 1명(26%)은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미 2014년 기준 한국의 노인자살은 인구 10만명당 54.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8.4명보다 월등히 높아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의 23.6%는 고독사를 우려했고, 75.6%는 노인의 자살과 고독사를 사회문제로 인식했다.
청·장년층도 80%는 노년기를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노인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청·장년층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이 겪을 수 있는 경험에 대해 ‘나이로 인해 차별을 받는다’(86.4%) ‘고독사 할까봐 염려된다’(83%)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82.8%)고 답했다.
이들은 현재 노인들보다 자신들의 노후를 더 비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현재 경제상황을 10점 만점으로 봤을 때 노인들이 생각하는 경제 수준은 평균 5.15였다. 하지만 청·장년층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토대로 노년기 경제적 수준을 예측한 점수가 평균 4.78에 그쳤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시혜와 배려의 대상으로 인식했던 노인을 완전한 권리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며 “노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존엄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현재 노인도, 미래 노인도 ‘노후 비관’
입력 2018-10-0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