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도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어야”

입력 2018-10-01 19:05 수정 2018-10-01 22:04

무대에 거대한 검은 비닐풍선이 놓여 있다. 그것은 누에고치처럼 숨을 쉬더니 마치 괴물같이 커져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옆 나체의 무용수들은 나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한국 최대의 현대무용 축제인 제21회 세계서울무용축제(이하 시댄스·예술감독 이종호)가 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에서 개막했다.

개막작인 이탈리아 현대무용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은 인류의 재앙을 다루는 한 편의 묵시록 같다. 안무가 피에트로 마를로(33·사진)가 이끄는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의 작품이다. 유럽 무용계의 샛별로 통하는 그는 개막 전 기자간담회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보다 관람자들에 의해 다층적으로 해석되기를 바란다. 검은 비닐은 은유를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시댄스는 무용도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올해 주제를 ‘난민’으로 정했다. 마를로의 작품 속 검은 비닐풍선은 거대 자본주의 혹은 유럽인들이 갖는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으며, 난민과 현지인의 갈등을 상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유럽이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을 활용하는 현대판 노예제를 비판하는 작업을 하다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을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 또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 많고 그것으로 작품을 한다”고 덧붙였다.

마를로는 2018년 유럽 현대무용 플랫폼인 에어로웨이브즈가 선정한 올해의 안무가에 뽑혔다. ‘난파선-멸종생물 목록’은 올해 세계 15곳의 초청을 받으며 단박에 그를 신인에서 중견급으로 올려놓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