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3일] 일하는 사람

입력 2018-10-03 00:01

찬송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580장(통 37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4장 34절

말씀 :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던 중 사마리아에 들르셨습니다.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러 와야 하는 어려운 사정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 대화하다 기뻐하며 그토록 불편해하던 자신의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외칩니다. 그사이 먹을 것을 사러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선생님 앞에 차려놓고 드시라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일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일로 인해 여인뿐 아니라 온 마을이 살게 됐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일의 근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바울 서신을 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라고 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죠. 바로 그때 아담 이래 멈춰 있던 ‘복음의 발전기’가 다시 가동됐고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게 된 것입니다. 이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 47:5)

우리 가정도 일하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 무리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고 대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은 십자가의 보혈로 죄에서 씻음 받아 원망과 불평의 자리를 떨치고, 원래 지음 받은 ‘영화와 존귀의 관’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복되고 보니 그 자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은 어디 계신가 보니 산 아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고 계십니다.(막 9:5) 여기에 초막을 짓고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어려운 사정이 있는 한 사람의 삶의 현장 속으로, 얽히고설킨 마을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입니다.

농촌에서 일꾼은 가장 대접받는 사람입니다. 일할 수 없는 이유는 힘이 없어서입니다. 힘이 없는 것은 먹지 않아서입니다. 배부른 사람이 되고 힘 있는 사람이 돼 결국 일하는 사람이 됩시다.

기도 : 일하시는 주님을 보며 우리도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오늘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만족합니다. 우리를 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는 주님, 우리가 그 힘 받아 여기 머무르지 않고 고난당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게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태웅 목사(충주 은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