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투저에 휩싸인 한국프로야구(KBO) 리그가 전인미답의 ‘시즌 1700홈런’ 시대를 향하고 있다. 지난 26일 KBO 사상 처음으로 시즌 1600홈런 고지가 돌파되더니, 34경기를 남겨둔 1일 현재 어느덧 1663개가 됐다. 타고투저가 심하다던 2016년의 홈런은 1483개, 지난해에는 1547개였다.
‘홈런 인플레’ 현상과 함께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김재환(두산 베어스), 박병호(넥센 히어로즈), 제이미 로맥·한동민(이상 SK 와이번스),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 5명이 됐다. 30홈런 이상 타자는 지난해 7명이었지만 올해는 벌써 9명이다. 이제는 20홈런 타자를 ‘거포’라 수식하는 일이 어색해질 정도다.
타고투저는 결국 타자들의 기술이 투수들의 역량보다 빨리 발전한 데서 왔다는 게 야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프로야구(MLB)에서 시작된 ‘뜬공 혁명’은 한국 타자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KT가 선수들의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를 측정한 자료를 수시로 제공하는 데서 볼 수 있듯, KBO 리그 선수들도 강한 타구를 띄우는 것을 목적으로 점점 체계적인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팔꿈치를 몸통에 붙이고 공을 최대한 끌어당겨 타격하는 ‘인 앤 아웃’ 스윙이 강조돼온 점도 타고투저를 도왔다. 과거에는 투수들의 몸쪽 승부구를 받아친 타구가 파울이 됐지만, 요즘은 담장을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에 따르면 전체 홈런 중 몸쪽 공을 공략한 홈런의 비중은 우타자의 경우 2011년 11.6%에서 2016년 22.3%로 높아졌다. 좌타자는 이 비중이 3.5%에서 7.6%로 2배 이상 늘었다.
화끈한 타격전은 야구의 매력이다. 하지만 큰 점수차가 허무하게 뒤집히는 장면은 프로야구답지 못하다는 여론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야구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KBO 투수들의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5.19에 달한다. 평균자책점이 3점 미만인 투수는 5년 전엔 리그에 3명이었지만 지금은 조쉬 린드블럼(두산) 1명뿐이다.
이에 타자들이 잘 치는 것이 아니라 투수들이 문제라는 쓴소리도 야구계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이 너무 두드러진다. 투수들의 기본기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경기 SPOTV 해설위원도 “타자들이 정작 각 팀의 에이스 투수를 상대로는 점수를 제대로 못 내지 않느냐”고 했다. 팀의 제 1선발 정도를 제외하고는 투수들의 발전이 너무 더딘 셈이다.
결국 스트라이크존 조정이나 시즌 단기화 등의 방편보다 투수들의 구위 회복이 타고투저의 근원적 해결책이 된다는 얘기다. 김인식 KBO 총재 고문 역시 “실력의 문제를 억지로 평준화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국제대회에서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 점을 거론하며 KBO에 지속적으로 공인구의 반발력 테스트를 건의하고 있다. 김 고문은 “테스트를 통과한 공이더라도 반발력을 좀 더 낮추는 것을 리그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홈런 ‘인플레’ 투수 ‘디플레’… 수준은 ‘글쎄’
입력 2018-10-02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