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정점 향하는 檢… 물적·인적 증거 확보한 듯

입력 2018-10-01 04:04
서울중앙지검 수사단이 30일 압수수색을 벌인 서울 종로구 고영한 전 대법관 자택 창문에 버티컬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다. 고 전 대법관은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의혹 등이 제기된 바 있다. 뉴시스
대법관 4명 전격 압수수색… 前 대법 양형위원 수첩엔 양승태 지시 빼곡히 적혀
법관들도 “양 前 대법원장 몰랐을 리 없다” 잇단 진술
법원 ‘영장 어깃장’ 지속 관측도


법원이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직 대법관 4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것을 두고 검찰 수사에 법원이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전원을 사법농단 수사에 투입해 총력전을 벌였고 그만큼 탄탄한 물적·인적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6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된 뒤 의혹의 ‘몸통’인 대법관급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위해 치밀한 보강 수사를 벌였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보’하는 위치에 있던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수시로 불러 사법농단 관련 지시·보고 여부를 면밀히 체크했다. 이 전 상임위원이 검찰에 제출한 업무수첩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보강 수사를 일단락한 뒤 추석 연휴 직후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4명의 대법관을 상대로 전격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을 향해 진검승부에 나선 것”이라며 “영장이 발부된 것은 결국 법원도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관련자들의 진술도 ‘대법관들’을 향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지연 의혹,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거래 의혹 등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재판거래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몰랐을 리가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대법원장 보고 없이 진행할 수 없는 사안들이었다’ ‘대법원장 관심 사안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대법원장 지시’는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행정처장을 통해 내려왔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 혐의와 전직 행정처장들의 혐의는 서로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둑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간 법원은 전현직 대법관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극도로 민감해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해 두 차례, 올해 한 차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를 진행한 뒤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을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했다. 내부 징계 절차에 회부한 인사는 이 전 상임위원 등 현직 법관 13명뿐이었다. 행정처 차장과 일부 휘하 법관들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했다고 발표한 셈이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며 “이제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도 줄줄이 발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검찰은 다른 피의자들에 대한 영장도 잇따라 청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다만 법원은 여전히 영장 집행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에 대한 영장만 발부하고 자택에 대한 영장은 기각하는 식이다. 차량에 사법농단 의혹 관련 증거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집행 범위를 제한하며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고 증거가 자택에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사유를 댔다고 한다. 검찰 출신인 명 부장판사는 기존 ‘3인 체제’의 업무 부담이 과중해 최근 영장전담에 투입됐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