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합치고 세대주 바꾸는 등 보험료 줄이기 각종 꼼수 횡행
국내에 재산 없는 외국인들 재산 토대로 한 제도 허점 악용
서류 진위·신원 확인도 어려워
지난 4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내게시판에 보험료 절감을 노린 외국인 가입자들의 꼼수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방금도 10만3800원을 내던 외국인 부부가 영주권자인 모친과 합가(合家)를 했다. 3명이 내는 보험료가 1만4060원으로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외국인들은 전년도 내국인 평균 보험료(10만3800원)를 내야 하지만 세대합가와 세대주 변경 방식으로 내국인보다 훨씬 적은 돈만 내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국민건강보험 외국인 가입자가 1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값비싼 치료만 받고 ‘먹튀’하는 일부 가입자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세대 합가 방식 등의 제도 허점을 노린 외국인 가입자가 늘면서 수익률까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공단 직원들은 외국인 가입자 급증을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7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역 인근 건보공단 외국인센터에서는 오전부터 “번호표라도 뽑게 해 달라”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로비에는 외국인 민원인이 가득 들어찼고, 공실인 옆 상가까지 대기 인원으로 넘쳐났다. 외국인센터는 서울 지역에 넘쳐나는 외국인 창구접수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7월 문을 열고 시범운영 중인데 하루 최소 250명 정도가 찾는다고 한다. 경비 A씨는 “오전에 와서 대기표를 끊지 않으면 오후에는 접수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라고 했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수도권의 한 건보공단 지부 실무자는 “비가 와서 공사현장 등이 쉬는 날이나 월초, 주초가 겹치는 날은 ‘3재(災)’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 심할 땐 하루 최고 800명까지도 온다”며 “직원들끼리는 ‘차라리 이럴 거면 외국인건강보험공단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농담까지 한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외국인 보험가입자가 느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동안 외국인의 경우 지역가입자 부문 손실을 직장가입자 부문에서 메워 수익도 내왔다. 공단에 따르면 전체 외국인 가입자로 인한 수익은 꾸준히 증가해 2015년에는 2594억원까지 늘었다.
그러나 최근 세대합가 등이 늘면서 이상기류가 발생했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2016년 외국인가입자 수익은 2223억원으로 전년도보다 370억원 정도 감소했고 지난해에도 66억원가량 줄었다. 국내에 재산이 없어 보험료가 낮은 외국인을 세대주로 변경한 뒤 합가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외국인 지역가입자 세대합가 기준은 배우자와 직계비존속, 미혼 형제자매, 세대구성원의 배우자, 세대주 배우자의 직계존속 및 자녀 등으로 느슨하다. 내국인의 경우 세대주가 주민등록법상 정해져 있지만 외국인은 관련법이 없어 손쉽게 세대주를 바꿀 수 있다.
공단도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6월 법령개정 입법예고를 했다. 오는 11월부터는 지역가입을 위한 최소 체류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세대합가 기준도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로 좁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은 이런 대책만으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보험료 부과체계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촘촘한 세대등록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외국인에게는 이를 적용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지사 관계자는 “단순히 더 오래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자격을 주도록 한 것이므로 악용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3개월 더 버티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브로커 등을 통한 문서위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서류 인증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건강보험공단 지사 민원창구에서 일했던 B씨는 “요건에 맞지 않은 서류를 가져온 외국인에게 다시 본국 서류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자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가져오는 서류도 다 위조다.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느냐’고 되물었다”며 “황당했지만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위조 수준이 정교해 비전문기관인 건보공단 현장 직원이 이를 판단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혼한 부부가 그대로 지역가입자로 가입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직장가입자 부문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번 개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현장 실무자 C씨는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등록 조건도 지역가입자 세대합가와 마찬가지로 국내법에 기초했기 때문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외국인들에겐 허점이 많다”고 말했다.
공단이 최근 5년간 고액 치료를 받은 외국인 환자 100명에게 지불한 건강보험료는 224억8000만원이다. 2015년 지역가입자 세대주로 가입한 중국인 재외동포 D씨의 경우 무혈성빈혈 치료 등으로 3년간 치료비 6억1000만원이 산출됐는데 이 중 5억5000만원을 건강보험이 지급했다. 본인부담금 6100만원도 상한액 초과 시 환급하는 규정에 따라 4500만원을 돌려받았다. D씨가 이 기간 지불한 보험료는 300만원이 채 안 됐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치료만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은 3만2000여명이나 됐다.
김재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격기준 강화 등의 대책은 미봉책”이라며 “외국인의 신원을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3명 건강보험료 월 1만4000원?… 구멍 난 외국인 징수체계
입력 2018-10-01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