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실상과 기형적 폭등
입주자대표회의 “싼값 매매 말라” 투기 수요·순수 거래 뒤섞여
500m 거리 다른 아파트보다 거래금액이 3배 높은 곳도
광주시·경찰 이례적 합동단속
여론 악화되자 뒤늦게 나서 불법거래 신고센터 운영 중
거품 빠지면 경제에 악영향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지적
#1.
지난달 광주 운암동 한 아파트 2단지 600여 세대에 안내문이 배포됐다. 제5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명의의 안내문에는 짤막한 출범소감과 결의에 찬 당부가 담겨 있었다. 동 대표들이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를 방문했는데 아파트 가격이 3∼4년 전과 동일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안내문에서 “학군·지리적 여건이 최고인 우리 아파트가 가장 저평가되어 있다. 이사를 가더라도 정상가에 매매해줄 것을 부탁한다. 만약에 낮은 가격에 거래를 부추기는 부동산업체는 고발 조치를 한다”고 강조했다. 철벽 하한선을 만들어 아파트 가격을 방어하거나 올려 받자는 논리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아파트 밀집지역의 경우 대부분 비슷하다. 각 단지마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중심으로 가격을 높이거나 일정 수준에서 사수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
‘광주의 강남’으로 불리는 봉선동 A아파트 단지. 전용면적 84㎡의 A아파트는 500여m 떨어진 같은 면적의 B아파트에 비해 3배나 시세가 높다. 동일한 넓이의 두 아파트는 3억원과 9억원대로 거래금액이 판이하다. 건축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이 정도로 가격차가 나는 근본 배경은 외부 투기세력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실제 지역에는 지난해부터 시세보다 5000만원 이상 높게 서류를 꾸며 신고한 뒤 60일 이전에 이를 철회하는 허위거래가 잦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정기간 내에 아파트 거래를 백지화하면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등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점을 투기꾼들이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사이 국토교통부 ‘부동산실거래가격’ 사이트에는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금액이 기정사실화된다.
광주지역 아파트 시장의 ‘기형적 폭등현상’은 지역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광주시와 경찰 등은 이상기류에 빠진 아파트 가격안정을 위해 이례적으로 합동단속에 나섰다. 광주시는 30일 “8·27 부동산대책 이후에도 불법행위가 사라지지 않아 단속활동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시와 경찰은 지도단속, 홍보·역량 강화, 제도개선의 3개 분야에 중점을 두고 단속활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27일부터는 ‘부동산 불법거래 신고센터’도 운영 중이다.
지역의 공인중개사 송정기(53)씨는 “전세를 무리하게 끼고 아파트를 한꺼번에 몇 채씩 사서 가격이 오르면 수익을 챙기고 빠지려는 ‘갭 투자’까지 성행하고 있다”며 “아파트 거래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 11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남구·광산구 등의 아파트 값 폭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전용면적 114㎡(45평형)의 모 아파트는 올해 1월 7억6000만원이었던 매물이 현재 12억원을 넘어 7개월 만에 5억원가량 올랐고, 같은 지역 모 아파트도 2배 이상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구체적 사례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시와 경찰의 집중단속에 대해 지역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도 대책 없이 방치하다가 시민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요란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검색한 결과 광주지역 아파트 가격은 뒤죽박죽 요지경이었다. 최고가 기준 지난해 1월 5억700만원에 거래됐던 봉선동 H아파트의 경우 올해 8월 8억6700만원으로 71%가량 수직 상승했다. 놀라운 건 7월만 해도 7억2500만원이었는데 불과 한 달 사이에 1억4200만원이나 폭등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월 3억9000만원에서 지난달 8억원으로 2배 이상 급등한 같은 동의 J아파트는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8개월간 1건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5억5000만원으로 순식간에 1억6000만원 올랐다가 올해 1월엔 4억3000만원으로 아무 이유 없이 1억2000만원이나 곤두박질했다. 실거래로 신고한 순수한 거래자와 투기꾼들이 부풀린 허위거래가 뒤섞인 결과로 분석된다.
이후 3월 6억6300만원으로 두 달 사이 2억3300만원이나 폭등했고 6월 이후 상승 기조를 이어가 8월에는 8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짧은 기간 동안 거래가격 변동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결과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광주시민들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64.4%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이 같은 아파트 가격 급등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역 한 은행의 부동산 대출담당 직원 안모(55)씨는 “광주 아파트 가격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탓에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며 “‘풍선효과’가 사라지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글·사진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114㎡ 7개월 만에 5억↑… 광주 아파트 값 수상한 폭등
입력 2018-10-01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