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으로부터 전자제품 등 금품을 수수한 간부를 ‘봐주기 징계’한 구체적 정황이 포착됐다. 내부 감사 과정에서 수수 금액을 실제 물품가액보다 낮게 책정해 해당 간부의 징계 수위를 낮추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 수사(국민일보 9월 21일자 12면 참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30일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이 공정위와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직 공정위 1급 간부 A씨는 2012년 12월 한 대형백화점 측으로부터 32인치 TV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선물 받았다. 공정위는 감사를 통해 A씨가 금품 69만3400원을 수수한 것으로 판단해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견책 처분이 내려졌다. 이후 A씨가 이의를 제기했고,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는 한 단계 감경된 ‘불문 경고’ 처분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검찰은 공정위가 감사 과정에서 A씨 징계 수위를 낮추려 금품 수수 금액을 낮게 책정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시 공정위는 A씨가 받은 TV의 가격을 28만6920원으로 책정했다. 해당 백화점이 진열대에 전시된 제품을 할인 구매해 건넸다는 이유로 정상가의 60%만 수수 금액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이 해당 백화점 측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당시 백화점은 TV를 정상가보다 더 높은 54만원에 구입해 A씨에게 선물했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구입가격 역시 공정위 감사에서 확인된 금액보다 높았다. 이에 따라 A씨가 받은 총 제품가액은 100만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백화점은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A씨에게 건넨 제품의 구매가격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0월 시행된 공무원 청렴의무 위반 처리 기준에 따르면 금품수수 공무원에 대한 징계 수위는 수수 금액 1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인 경우 가장 낮은 게 견책이다. 반면 ‘100만원 이상’부터는 최소 감봉·정직에 처해진다. 공정위 감사에서 A씨의 수수 금액이 100만원 이상으로 확인됐다면 징계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었던 셈이다. 2015년부터는 수수 금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무조건 퇴출하는 공무원징계령 시행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김 의원은 “공정위가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해 수수 금액을 짜맞춘 것으로 의심된다. 전형적 ‘제 식구 감싸기’ 감사”라고 지적했다.
A씨가 감경 참작사유로 제시한 다른 근거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A씨는 2012년 12월 제공받은 물품들을 약 7개월이 지난 시점에야 해당 백화점 측에 반환했다. 하지만 A씨는 실제 물품을 사용한 기간이 10여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심사 과정에서 받아들여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입장을 밝히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단독] “54만원 구입 TV가 28만원으로” 공정위 ‘제 식구 감싸기 감사’ 의혹
입력 2018-09-30 18:46 수정 2018-09-30 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