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연준이 27일 새벽(한국시간) 올 들어 세 번째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0.75% 포인트로 벌어졌다. 11년2개월 만에 최대 폭이다.
돈은 일반적으로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신흥국의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압박은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수출지표 등 기초체력이 양호해 당장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미국은 ‘통화긴축 시계’를 당장 멈출 계획이 없다. 올해 한 차례, 내년 세 차례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기준금리는 10개월째 동결 상태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75∼2%에서 연 2∼2.25%로 올렸다. 미국 기준금리 하단이 2%를 밟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달갑지 않다(not happy)”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좋아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도 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정치는 연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배경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파월 의장은 현재 미국 경제에 대해 “특별히 빛나는(bright)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3.1%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과 달리 신흥국 경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의 자금 유출을 불러온다. 터키 아르헨티나 등의 통화가치가 고꾸라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신흥국들은 속속 맞대응에 나섰다. 연준 발표 이후 인도네시아 필리핀 홍콩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그나마 한국은 당장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위기에 빠진 신흥국들과 달리 한국은 77개월째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본 유출은 금리에 곧바로 반응하는 자금과 기업의 장기 수익에 반응하는 자금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며 “일부 신흥국들은 금리에 반응하는 자금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적고, 고유한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내년 기준금리를 예고한대로 세 차례까지 올리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점도 긍정적이다.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시장에선 이를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의 마무리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미국의 내년 금리 인상이 1∼2차례에 그칠 경우 금융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코스피지수는 0.7% 오르며 약 3개월 만에 2350선을 회복했다. 김두언 KB증권 선임연구원은 “확산되는 미·중 무역전쟁도 부담 요인”이라며 “연준이 내년 2차례 금리를 인상해 연 3% 부근에서 인상 사이클을 멈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만 할 수는 없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국채 금리가 3%인데 한국은 2%인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외국인 투자자는 오랫동안 자금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며 “금리 차이를 계속 유지하면서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장지영 기자 naa@kmib.co.kr
美 ‘통화 긴축’ 가속도 … 신흥국 자금 유출 초비상
입력 2018-09-27 18:06 수정 2018-09-27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