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한 지붕 두 가족’ 구조다. 불공정행위를 적발해 처벌을 구하는 사무처(검찰)와 사무처의 심사 보고를 받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위원회(법원)가 공존한다. 그렇지만 수장은 1명이다.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손엔 조사권을, 다른 한 손엔 심판권을 갖는다. 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한 쪽으로 조사를 지시하고, 한 편으로는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구조다. 과거에는 위원장의 전횡으로 무리한 조사와 심판이 이뤄진 적이 있었다. 박근혜정부 시절 밉보인 CJ를 손보기 위한 CJ CGV의 부당지원 사건, 이명박정부 당시 물가를 잡겠다고 나선 라면 담합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건들은 예외 없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사법부는 이런 전례 때문에 공정위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검찰은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과정에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법원 역시 공정위의 판결을 1심 재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심제(고등법원-대법원)로 운영되는 불공정행위 재판을 3심제(공정위가 보면 4심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가 사법부는 물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사무처와 위원회 사이에 엄격한 칸막이를 쳐야 한다. 그 칸막이 아래서 내부적으로 어떠한 부당 거래와 짬짜미 없이 심판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이런 원칙을 누구보다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는 공정위원장이다.
그런데 최근 김상조 위원장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 발단은 검찰의 공정위 퇴직자 특혜취업 수사였다. 검찰은 지난달 지철호 부위원장을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받지 않고 취업 제한 기관에 취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위원장은 이후 그를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사실상 나가라는 압력이지만 지 부위원장은 억울하다며 버티고 있다. 조직을 위해 그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과, 전속고발권 논의 과정에서 검찰에 밉보여 ‘괘씸죄’로 기소 당했다는 지 부위원장 중 누가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로 인해 공정위 심판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제의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 부위원장은 공정위원 중 1명이다. 공정위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3명의 상임위원, 4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9명이 다수결로 혐의가 있고 없고를 결정한다. 9명 중 5명이 찬성해야 과징금을 매기고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위원회 심의·의결과정에서 공정위원장이든 비상임위원이든 똑같은 1표다.
공정위원은 이런 중요성 때문에 대통령이 임명하고 3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장기간 심신쇠약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면직 또는 해촉되지 않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법률상 근거도 없이 지 부위원장을 한 달 넘도록 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판관을 재판에서 임의로 배제한 셈이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 비상임위원제도 폐지 등 심판 독립성을 강조했던 김 위원장이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이 지 부위원장을 공정위 심판에서 배제하고 싶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설득해 교체하는 게 순리다.
지 부위원장 업무배제 이후 공정위 직원들은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 지 부위원장에 이어 1급 고위 간부들이 검찰의 추가 비리 수사선상에 오른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조직의 위기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 간부는 “위원장은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공정위를 제대로 이끌 책임이 있다”면서 “현 상황은 위원장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만난 현 정부 개국공신 격 정치인은 김 위원장에 대해 “한마디로 아마추어”라고 말했다. 그의 좌충우돌 발언과 투박한 리더십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적폐행위는 모두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일어났다. 아마추어라도 법대로만 하면 된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세상만사-이성규] 법대로 하면 된다
입력 2018-09-2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