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장상] 역사의 문이 열렸다

입력 2018-09-27 04:03

평안북도 용천이 나의 고향이다. 1947년,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훌쩍 남으로 떠나왔다. 이후 70여년이 지난 이날까지 한 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은 늘 내게 그리움의 땅으로 남아 있다.

이북에서는 명절에 만두를 빚는다. 주먹만큼 큰 왕만두다. 만두 크기가 조금만 작으면 “손이 작네”라는 핀잔을 듣는다. 떡은 주로 인절미였다. 장정이 마당에서 떡메를 치면 신나서 그 주변을 뛰놀던 기억이 선하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 용천에 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에 마음이 설레었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하면서 내 생전에 통일의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나는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때 처음 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2015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에큐메니컬 포럼’ 참석차 방북했다. 세계교회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이었다. 지난 18∼20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도 같은 자격으로 가게 됐다.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변화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고 발전에 대한 북한의 열망을 매우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놀라웠다. 우선 평양 시내에 높고 아름다운 건물이 무척 많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서울에 맞먹는다고나 할까.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매우 활기차고 밝아 보였다. 과거 방문 때는 거리에 ‘투쟁’ 등 호전적인 단어가 들어간 현수막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북의 사회가 바뀌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교육기관을 방문했는데 북한이 과학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며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과학과 예술 분야 교육을 하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 갔을 때, 한 교실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컴퓨터 앞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수준이 꽤 높아 보였다. ‘경제화 과학화 기술화’ ‘과학기술로 승부하자’ 등의 슬로건을 건물 내부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경제 발전과 과학 교육을 나아갈 방향으로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북한의 변화를 보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북한이 남쪽 대표단을 맞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일 밤 평양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연설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연설 중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했을 때 15만 관중이 어느 대목보다 열렬하게 환호하면서 손뼉을 쳤다. 북한 주민들이 비핵화에 관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문은 비핵화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실었다. 일각에서 남북 간 논의가 북한에만 유리하다는 등의 비판이 있다. 우리는 그런 의견들도 충분히 존중하고 검토하며 우리 상호간의 이해를 깊게 넓혀가야 한다. 역사의 흐름은 우리 사회 곳곳에 골고루 흘러가야 한다. 국민 모두가 남북 화해에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대화하고 이해를 높여가야 한다. 우리의 준비와 노력에 따라 역사는 이루어져 간다.

역사의 문이 열린 것은 분명해 보이나 역사는 한날한시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한반도 화해와 번영의 길이다. 가는 길이 언제나 순탄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하더라도 우리 민족이 흔들림 없이 열망하고 성실하게 준비한다면 마침내는 우리가 기대하는 역사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역사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나는 3년 전부터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도 모임을 이끌고 있다. 한국 교회의 주요한 시대적 사명 중 하나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가 기도하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장상 (WCC공동의장·전 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