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어머니는 조금만 잘못을 해도 매를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고 울지 않았다. 벌을 주고 아프게 때려도 울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사망한 뒤 흘린 많은 눈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더 흘릴 눈물이 없어서였을까. 여하튼 신기하게도 내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매를 맞을 때마다 사촌형제들이 빨리 도망가라고 했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그래서 ‘울지 않는 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금 생각하면 울지 않는 아이라기보다 울음을 참았던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울지도 않으니 벌은 더 세게 받았고 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참을 만큼 참다가 도망가다시피 간 곳이 바로 동네 교회다. 그곳엔 박 권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성경에서 강도만난 사람을 돌봐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분도 홀로 사셨다. 하루는 내게 큰 인물이 되라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정말 좋은 분이었다. 교회에 가면 박 권사님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 생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목사님 설교 중에 “육신의 부모가 너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으시며 성령님은 어머니 같이 돌봐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은 부모를 잃고 슬퍼서 우는 눈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박 권사님의 돌봄의 사랑 때문에 운 것이다.
‘울지 않는 아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나는 울고 있었다. 벌을 서고 매를 맞을 때 울지 않겠다는 얼음장 같은 굳은 결심은 하나님 사랑 앞에, 박 권사님의 관심과 돌봄 앞에 녹고 말았다.
차별 대우와 모진 체벌 등으로 인한 나의 상한 마음은 치유됐다. 역경을 이기는 힘은 내 의지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이 말씀은 목회를 하면서 늘 묵상하는 말씀이다. 만일 내가 부모를 잃지 않았다면 어떻게 고독하고 외로운 고아와 과부로 살아가는 교인의 아픔을 알았을까. 특히 교회에서 ‘돌봄 목회’라는 표어를 내걸고 홀로된 사람을 돌보는데 양약이 됐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그랬다. 내게 역경은 필요한 아픔이었다. 부모를 잃은 일, 가족 간에 왕따를 당한 일,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 어린 내게 견디기 어려운 역경이었지만 목회하는 데는 내공이었고 역경의 열매였다. 삶을 단련해 정금을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기지 못할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연단시켜 주의 증인으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레슨으로 믿고 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