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났다. 장성한 조카들이 결혼해 가정을 꾸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부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다.(창 1:26∼28) 하나님은 얼마든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 혹은 동성애적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의 결합을 이루도록 하셨다. 일부일처제라는 부부관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한 번 더 확고하게 인정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과 결혼과 가정에 대해 생각할 때 가져야 할 기초가 되게 하셨다.(막 10:2∼9)
성적인 충동이 단순히 ‘성적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충동이나 행동들로 이어진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인간의 성은 다양한 사회 환경에 의해 영향 받을 수 있고 동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성적 동기들이 인간의 모든 행위와 연관된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 전체의 영역과 행위에서 성적인 동기들이 적절하게 작동하도록 가꿔가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 헬무트 쉘스키는 이런 측면에 주목해 “제도화된 결혼의 가장 큰 성취는 배우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성이 배우자를 위한 봉사의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한 것에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성이 인간이 영위하는 공동생활과 문화적인 모습 안에 통합된다는 사실에서 성은 결혼을 통해 ‘제도화’될 필요가 생긴다. 이성 간의 지속적 관계는 많은 종류의 고등동물에게도 나타나는 유전적 특성이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성적 관계의 지속성은 단지 자녀 양육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니라 인간 행동이 가진 고유하고 본질적인 특징에 근거를 둔다. 인간은 장기간에 걸친 활동내역을 기억할 수 있으며 인간의 의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지속성을 유지하려는 의향을 갖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종교적인 확신과 규범들로 인해 ‘자연’에서 ‘문화’로 전이가 이뤄졌는데 결혼도 그 가운데 포함된다는 것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증명했다. 다시 말해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형성된 것에는 종교적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결혼이란 두 사람 사이의 단순한 계약관계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적인 특성을 지니며 그런 특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바로 종교적인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쉘스키가 말한 것처럼 일부일처제에서 발생하는 남녀 사이의 소속감과 운명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인간의 성을 인간 실존과 정신성의 가장 승화된 높이에서 숭고하게 통합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는 그런 실현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판넨베르크는 이렇게 현대 문화에서 일부일처제가 점차 퇴색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의 공공의식에서 종교적 기반이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에 와서 하나님 앞에서의 연합이라는 개념은 배우자끼리의 사랑의 연합으로 대체돼 버렸다. 그런데 사랑의 연합을 감정적으로만 이해하면 오히려 결혼의 지속성이 방해 받는다. 강렬한 사랑의 감정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혼외 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기독교의 이해에 따르면 결혼이 비록 당사자들 사이의 호감과 소속감이라는 감정에서 출발할 수는 있어도 그것에만 의지해 평생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는 바로 결혼이 하나님 앞에서 맺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용서하는 사랑에서부터 시작하면 배우자와의 불완전성과 동시에 자신의 불완전함을 참아낼 수 있게 된다. 상호이해와 상호용서의 경험으로부터 더 깊은 연대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에서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결혼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가 많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려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또 교회에서도 축복 받을 일이다. 올 가을에 결혼하는 부부 모두가 백년해로하는 축복을 누리길 기원한다.
우병훈 (고신대 신학과 교수)
[시온의 소리]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
입력 2018-09-27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