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동선언으로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금융시장 저평가)’를 해소하는데 바짝 다가섰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결할 발판을 마련한데다 남북 경제협력 방안이 보다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고 평가한다. 대북 제재 완화 등 마지막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선언문에 4월 판문점 선언 때보다 진전된 ‘비핵화 프로세스’가 담겼다고 본다. 특히 영변 핵시설 폐기 가능성이 처음으로 언급되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고질병’으로 여겨지던 지정학적 리스크가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압도적이다.
평양공동선언의 부속으로 채택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도 금융시장 안정에 힘을 보탰다. 그동안 국내 증시는 북핵 위협이나 무력 도발이 벌어질 때마다 출렁거렸다. 이번 합의에서 한반도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일체를 전면 중지키로 하면서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이전보다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가 부도위험 정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0일 38bp(1bp=0.01%)까지 떨어졌다. 연중 최저치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부도를 냈을 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금융파생상품이다.
구체적 경협 방안의 도출도 반길 일이다. 하인환 SK증권 연구원은 “연내 동·서해선 착공식,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우선 정상화 등 구체적 경협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KB증권은 리포트를 내고 “향후 북·미 대화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북한 개방 관련주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은 ‘미국의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른 상응조치’를 영변 핵시설 폐기의 전제조건으로 걸었다. 미국이 긍정적 답을 내놓지 않으면 국내 금융시장은 다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원화는 비핵화와 북한의 핵시설 영구폐기 간에 의견조율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도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에 민감한 경협주가 미지근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는 경협주들이 무더기로 상한가를 찍었다. 다만 경협주 개별 종목의 시가총액 합계가 연초 대비 63% 상승한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이미 주가에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4일 있을 한·미 정상회담과 이후 북·미 정상회담에 주목한다. 특히 북·미 회담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직접적인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이 기존에 미국이 제시했던 요구조건을 얼마나 충족시켰을지가 관건”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는 환영하되, 핵 신고 데드라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국가 부도위험 연중 최저치, 줄어든 ‘코리아 디스카운트’
입력 2018-09-21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