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선교현장서 시작합니다”

입력 2018-09-28 17:48
제10기 전문인 은퇴자 자비량 선교 교육훈련 개강식 및 홈커밍데이 참석자들이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남서울은혜교회 밀알학교에서 신갈렙 열방네트워크 대표의 강의를 듣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사진=게티이미지
"전공을 살려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에서 사역하려 합니다. 이주민 자녀를 위해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려고요."(79·전 대학교수) "지금은 전문인 자비량 선교 시대입니다. 은퇴는 크리스천에게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회입니다."(50대 장로·권사 부부) "인생 2막은 선교현장입니다. 세상 직업은 은퇴할 수 있지만 하나님 사역에서 은퇴란 있을 수 없습니다."(60·간호사)

서울 강남구 광평로 남서울은혜교회가 지난 4일 진행한 제10기 ‘전문인 은퇴자 자비량 선교 교육훈련’ 개강식 및 홈커밍데이는 선교 열기로 뜨거웠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신입생들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2009년 초 출범한 이 교육훈련은 크리스천의 후반 인생을 통해 다양한 선교활동을 보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은퇴자들은 20∼30주간 선교이론 및 영성훈련, 선교실습 과정을 마친 뒤 국내외 비정부기구(NGO)나 선교단체 등으로 파송돼 전문인 선교인력으로 활동한다.

전문인 선교사들이야말로 ‘일하는 목회’의 전형이다. 특히 해외 선교지에선 전문인 선교사를 통한 사역의 열매를 많이 기대한다. 전문인 선교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외부의 후원 없이 타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를 선교에 동원할 수 있고, 이슬람이나 힌두교권 등 폐쇄지역에도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선교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화 장벽을 극복하는 데도 유리하다. 선교계에선 이를 ‘평신도 선교’ ‘직업 선교’ ‘자비량 선교’ 등으로 부른다.

자비량 선교는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하면서 선교하는 형태를 말한다. 성경에서 ‘자비량’은 고린도전서 9장 7절에 나온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사도 바울이 이 구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일하면서 선교할 것을 결단했고 이를 실천했다.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tentmaking)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선교사역을 위한 충분한 선교자금이 확보됐을 때를 제외하고 그는 틈틈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자신의 생계비와 동료들의 선교사역을 위한 비용을 감당했다. 후대의 많은 선교사들은 바울의 모범을 따라 일과 선교사역을 균형 있게 조절하며 선교지에서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일과 사역이라는 두 영역에서 모두 열매를 맺기란 힘들다. 기본적으로 자립을 위해 낮 시간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고, 현지어를 마스터해 현지인 전도 및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 또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돌봐야 한다. 유학생의 경우엔 공부도 해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들은 3중, 4중의 십자가를 지고 많은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김모(32) 일본 유학생 선교사는 매일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신문을 배달하며 복음 전파와 학문을 병행하고 있다. 서모(45) 선교사는 헝가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자비량 선교를 하고 있다. 이곳 대학 캠퍼스에서 제자양육을 하고 인근 세르비아 선교사를 지원한다. 최모(54) 선교사는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사표를 내고 캐나다에서 접시를 닦으며 자비량 선교를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수입과 비교하면 적은 액수지만 주말이면 소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가 즐겁다.

매사가 행복하고 즐거운 건 아니다. 일하는 회사에서 선교활동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현지어를 익힐 시간 역시 부족하다. 목회자가 아닌 경우엔 가끔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교회나 교단 파송 선교사와의 연합이나 협력 사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약점도 있다.

그래서 아예 국내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전문인 선교사도 있다. 국내 유학생이나 이주민을 대상으로 ‘역(逆)파송’이 늘고 있다. ‘역파송’이란 선교 대상지 국민을 전도하고 파송국가에서 신학교육을 한 뒤 출신 국가 및 같은 문화권에 파송하는 선교형식을 말한다.

20여년 전 외국인근로자로 한국에 왔던 이호잣(52) 목사는 이란 출신으로 ‘국내 종교난민 1호’다. 그는 현재 이란과 인접한 터키에서 100만 이란인과 무슬림 복음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목사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공장에서 일하던 중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배우러 교회를 찾았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무슬림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도인 힌두교도였던 판가즈 카필라(37)씨도 나섬공동체를 통해 역파송을 준비 중이다. 카필라씨는 27일 전화통화에서 “친한 친구가 살인사건에 휘말려 교회의 도움을 받다 기독교에 입문했다. 거칠었던 내가 순한 양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전문인 선교사 양성기관으로 남서울은혜교회의 ‘전문인 은퇴자 자비량 선교 교육훈련’ 외에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한국전문인선교훈련원 세계CEO전문인선교회 컴퓨터전문인선교회, 한일장신대 전문인선교아카데미, 온누리 전문인선교훈련학교, 하나교회 전문인선교비전스쿨 등이 있다.

선교사들이 일하면서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도 있다. 본월드미션은 선교사들이 해외 사역지에서 죽과 도시락, 커피 등을 파는 매장을 열어 ‘일하는 목회’를 통해 선교의 접촉점을 갖도록 했다. 2016년 우크라이나 ‘해외 비즈니스 선교매장 1호’를 시작으로 현재 필리핀 태국 몽골 브라질 루마니아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14개 매장을 오픈했다. 다음 달 20일까지 제1회 본죽 프랜차이즈 미션 아카데미 참가자도 모집한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따르면 전 세계 한국 선교사는 전문인 선교사를 포함해 2만7000여명에 이른다. 지역별로는 동북아시아 22.55%, 동남아시아 20.21%, 북아메리카 10.62%, 한국 7.08%, 남아시아 6.54% 등의 순이다(표 참조).

정인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총장은 “아직 많은 교회가 전문인 선교사를 통한 일하는 목회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전문인 선교사들이 각 처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한국교회에 맡겨진 중요한 사명”이라고 밝혔다.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직전 회장은 “종족과 문화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전문인 선교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며 “각 분야, 일하는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문 사역자들이 한국교회 안팎에 널리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영대 김아영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