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재 변호사)이 무단 반출한 대법원 기밀 문건 중 파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문건의 목록을 지난 12일 제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처가 ‘문건 목록’을 확보해 민감 자료의 파기 여부를 파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행정처 관계자는 19일 “유 전 연구관은 현재 갖고 있는 문건 등의 목록을 소속 변호사를 통해 행정처에 제출했다”며 “목록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 전 연구관은 2014년 2월∼2017년 1월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취득해 반출한 수만건의 기밀문건 파일을 지난 6일 파기했다고 10일 행정처에 알려왔다. 이후 행정처는 파기한 뒤 남은 문건이 있는지 확인한 뒤 이에 대한 목록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당초 행정처는 유 전 연구관의 문건 무단 반출 사실을 접한 뒤인 지난 7일 검찰에 “(문건) 회수 등의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통지했다. 검찰은 이에 “회수는 증거인멸죄 가능성이 있어 불가하다. 이를 행정처에 수차례 전달했다”고 반발했고 행정처도 이후 문건 회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애초 반출 문건을 회수하려 했던 행정처가 입장을 바꾼 게 유 전 연구관 측이 재판 거래 관련 내용 등이 담긴 민감한 문건을 폐기한 것을 문건 목록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 아니겠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유 전 연구관 반출 문건들 중에는 통합진보당·전교조·강제징용 재판 거래 자료, ‘박근혜 청와대’ 관심 재판 정보 보고서 등이 대거 포함됐고,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만한 자료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다만 행정처는 “문건 목록을 받기 전인 지난 11일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을 참관할 당시 유 전 연구관이 남은 문건을 행정처에 제출하겠다고 했고, 그때 이미 회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건 목록을 확인하고 입장을 바꾼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반출 문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검찰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이 유 전 연구관의 증거인멸에 개입했는지 수사 중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유 전 연구관의 영장실질심사는 20일 열린다.
이와 함께 행정처와 청와대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지연 거래 의혹’과 관련해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이날 소환 조사했다. 조 전 수석은 2014년 10월 강제징용 재판 지연 및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방안 등이 논의된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회의’에 참석했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 중인 조 전 수석은 오는 22일 구속 만료로 석방된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 수사 당시 법관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영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
[단독] 행정처, 남은 ‘유해용 문건’ 이미 확인했다
입력 2018-09-19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