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19일 내놓은 ‘평양공동선언’은 경제협력 측면에서도 파격을 보였다. 끊어진 경제협력을 잇는 첫 단추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명시했다. 서해경제공동특구, 동해관광공동특구라는 다음 단계의 밑그림도 마련했다. 다만 유엔의 대북 제재라는 걸림돌이 있어 경협이 속도를 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되고 서해와 동해에 공동특구가 조성되면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경제지도’(H벨트) 구상도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중국으로 확장할 수 있는 ‘환황해 벨트’와 러시아 일본을 겨냥한 ‘환동해 벨트’를 두 개의 기둥으로 삼고 가운데를 잇는 ‘접경지역 벨트’를 더한 남북 경협 구상이다. 두 기둥의 명칭이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로 달라졌지만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서해경제공동특구는 남한의 기술·자본에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한 개성공단 형태의 산업단지, 동해관광공동특구는 금강산과 연계되는 관광단지로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경협과 관련해 전향적 내용이 선언문에 담기면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봄이 온다고 한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 9·19 평양공동선언으로 진짜 가을이 왔다”며 환영했다. 금강산관광 사업권을 쥐고 있는 현대그룹은 “사업 정상화를 위한 환경이 조속히 마련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언문의 문구가 실제 이행되려면 남북 합의만으로 어렵다. 유엔이 걸어 놓은 대북 제재의 빗장을 풀어야만 한다. 선언문에서 ‘조건이 마련됨에 따라’라는 단서를 단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강산관광의 경우 대북 제재와 상관없다는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최창용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일반인 관광은 그 나라에서 허용하면 가능한 것”이라며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가시밭길’ 앞에 놓여 있다. 한 국책연구원의 북한 전문가는 “개성공단은 5개 대북 제재에 안 걸리는 게 없다”며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를 선언하기 전까지 개성공단 재가동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경제인 17명은 19일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에 있는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방문했다. 2016년 5월 준공된 곳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재건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 분야 협력은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데다 이번 평양공동선언에도 산림 협력 내용이 포함된 만큼 앞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은 지난 7월 산림 분과 회담에서 양묘장 현대화를 포함한 산림조성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오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산림 황폐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2023년까지 나무 65억 그루를 심는 ‘산림조성 10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다. 북한이 남측 주요 경제인들의 첫 방문 장소로 양묘장을 택한 것은 열악한 산림 현황을 보여주고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SK그룹은 고 최종현 회장 시절부터 산림녹화에 큰 관심을 갖고 꾸준히 사업을 진행해 왔다는 점에서 북한 산림 사업에 적극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김준엽 정건희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snoopy@kmib.co.kr
큰 걸음 뗀 경협… 대북 제재가 관건
입력 2018-09-19 18:30 수정 2018-09-19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