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빌 3:10∼11)
사도 바울은 죽음을 통해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이야기인가. 부활의 선제 조건은 죽음이다.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부활을 위한 최고의 준비로 죽음을 택했다. 죽음은 곧 자기 부인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하셨다.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고 충북 보은에 내려가 사과 과수원을 하시는 이규정 목사라는 분이 계시다. 백발의 목사는 집을 짓고 밭을 사고 농기계를 구입했다. 이분은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사료판매, 신문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20여년 제철회사에서 일했다. 그 후 신학교를 마치고 47세에 교회를 개척해 20여년 목회자로 섬겼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직접 농사지은 사과로 아프리카 케냐의 빈곤아동을 후원하고 우간다에 식수펌프를 설치하고 있다.
이 목사님이 ‘샘과 그늘’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결혼 후 사회 20년, 목회 20년 그리고 은퇴 후 지금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에게 그동안 함께 십자가를 져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당신의 고통에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이 책을 드린다. 은퇴 후의 삶이 예수께서 가신 ‘비아 돌로로사’ 곧 슬픔의 길인 갈보리 언덕길이건만 십자가 없이 올라가는 등산길이 될 뻔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은퇴 후의 삶이 십자가 없는 편한 등산길이 될 뻔했는데 뜻밖에 장애를 갖게 된 사모님으로 인해 힘에 부친 삶을 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길을 올라가지만 슬프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십자가 없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다. 자기 부인이 없다. 죽기를 거부한다. 그 결과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세상에서 잘 살려고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우리는 천국에서 못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으면 산다. 살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죽는 것이 곧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을 사는 참된 지혜와 방법이 여기에 있다. 바울은 몇 해 동안 로마의 감옥에 투옥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죽음 뒤의 부활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주님과 같이 모욕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시인처럼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를 죽음의 자리로 보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보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두움을 밝히는 생명의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가을 기도하듯 윤동주의 시를 읽는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박노훈(신촌성결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가을의 기도
입력 2018-09-2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