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영진] 평양공동선언의 허와 실

입력 2018-09-20 04:00

18일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 비핵화, 군사적 긴장 완화 3가지 문제를 다룬 정상회의에서는 9·19 평양공동선언이 채택됐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조기 개소, 연내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김 위원장의 가까운 시일 내 서울 방문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남북 관계가 단절되고 긴장상태에 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진전을 보자. 이번 정상회담도 의미 있는 행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약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 개선, 비핵화,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이 왜 중요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일까.

남북 관계 개선은 유엔 안보리 제재하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개척해 나가기 쉽지 않다.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경제협력을 우리가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북 관계 개선은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미국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남북 경협을 약속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 경우 안보리 제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과 균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문 대통령 방북에 앞서 우리에게 남북 관계 진전과 비핵화에 대한 미국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없으면 안보리 제재를 해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단순한 ‘비핵화’가 아니다. 북한이 내거는 ‘조건’이 있음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북한에 대한 위협 해소’가 있어야 비핵화를 하겠다고 여러 번 선언했다. 북한에 대한 위협 해소는 안보리 제재 해소다. 겉으로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내세우고 있으나 종전선언의 뒤를 잇게 되는 평화협정에는 안보리 제재 해소 등이 포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게 된다. 결국 종전선언은 안보리 제재 해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경제, 즉 경제 제재 해소에 그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경제가 북한 체제의 생존을 좌우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경제적인 제약을 덜 받는 것인 만큼 남북 간 협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긴장 완화는 북한이 선뜻 동의하기 쉽지 않다. 북한 정권을 유지하는 근간인 통제체제를 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는 북한 정권의 남북 관계에 대한 의도와 상관없이 북한 정권을 지키고 있는 주민 통제체제 때문에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들어가야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제3차 평양 정상회담의 세 가지 중요 의제가 모두 다차원적이고 근원적인 어려움 때문에 열심히 진솔하게 노력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로만 뚫고 나가기 힘들다. 이 문제들은 특히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와 직결돼 있다. 북한의 딜레마는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없고, 북한만이 처리해 나가야 한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 우리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에 실질적인 진전이 힘든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노력과 관계없는 북한 내부의 문제 때문이다. 북한이 구소련과는 달리 붕괴, 소멸을 피하려면 반드시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경제를 재건하려면 바깥세상과의 무역과 투자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는 곧 개방 개혁을 의미한다. 그러나 철저한 통제체제로 유지되는 북한 정권에 개혁 개방은 무섭다. 개방을 통해 주민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통제의 이완을 의미하고, 이것은 곧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권 유지를 위해 주민 통제를 계속하자니 경제가 더욱 나빠져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결국 붕괴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것이 북한 문제의 본질이다. 북한이 진실로 두려워하는 위협은 내부로부터의 위협이지, 미국의 침공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성을 가지고 북한 문제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최영진(전 주미대사·연세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