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예전 경성(서울)과 평양을 오간 ‘경평축구’ 역사를 재조명하는 추억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경성의 풋뽈, 그리고 경평축구’라는 주제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1월 11일까지 열린다. 한반도 분단 이전 남북이 함께 한 ‘경평축구 대항전’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해보는 자리다.
우리나라의 근대축구는 1882년 제물포에 정박해 있던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 선원들에 의해 소개됐고, 이후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근대 스포츠를 교육하면서 점차 확산됐다. 당시엔 요즘과 달리 축구장이 따로 없었다. 넓은 들판이나 공터면 충분했다. 한복차림으로 소나 돼지의 오줌보로 만든 공이 전부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구한말 근대 한국 축구의 시작부터 일제강점기 축구대회 열풍에 따라 열린 각종축구대회까지 한국 축구의 역사를 살펴본다. 1929년 10월 8일 열린 경평축구대항전부터 90년 개최된 남북통일축구대회까지 남북 축구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경평축구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양대 도시인 경성과 평양 축구단이 벌여온 친선 축구경기였다. 이 대회는 광복 직후인 46년 서울에서 열린 대회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4년 뒤 6월 25일 새벽 4시 동족상잔의 비극이 엄습했다. 제4회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던 날이었다. 그때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는 월드컵의 열기 대신 폭탄과 포화의 열전이 발발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북한 인민군이 서울로 진격하고 있던 순간, 월드컵 국제축구 연맹(FIFA) 줄 리메 회장은 브라질 월드컵을 ‘세계평화의 제전’이라고 선포한 후 축구 개막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3년이 넘도록 이어진 전쟁으로 그야말로 한반도는 초토화됐다. 이 전쟁으로 인해 구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는 더욱 가속화했고 남북 분단은 더욱 고착화됐다. 남북은 무려 68년 동안 가족이 생이별한 이산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구소련 연방의 해체 및 동서독의 통일 후 냉전 체제가 무너졌어도 유독 한반도는 신세계 질서에서 고립된 섬처럼 냉전과 분단의 고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축구를 통한 화해 무드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90년엔 통일축구대회란 이름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두 차례의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추진됐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평축구대항전 부활의 발판이 마련됐다.
경평축구 부활 움직임에 맞춰 ㈔월드헤브론이 주관하는 ‘2018 국민일보사기 전국교회 축구선교대회’도 열린다. 11월 10일 충북 청주 용정구장에서 개최되는 축구선교대회는 99년 헤브론기로 시작해 2009∼2010년 국민일보사기, 2011년부터 헤브론기로 바뀌었다가 국민일보 창립 30주년을 맞아 다시 태어난다.
이번 대회 대표대회장을 맡은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축구정신으로 세상을 바꾸고 평화를 이룩하자고 강조한다. 인류의 평화를 목적으로 축구를 통해 신뢰를 얻고, 우정을 쌓고 평등을 배우며 감독과 심판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동료에게 배려하고 팬을 사랑하며 역할에 충실, 뛰어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개인기로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꼽는다. 평생 효 운동을 펼치고 있는 최 목사는 ‘하모니 축구’를 강조한다. 한두 명의 독불장군이 아니라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 11명이 연합을 이뤄야 패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합동과 통합 등 대표적인 교단의 총회가 리더십을 교체하고 2019년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준비체제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89년 전 첫 경평전이 서울에서 열렸으니 부활전은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다함께 기도하면 어떨까. 경평전 부활에 앞서 11월 청주에서 열리는 국민일보사기 축구선교대회에서 말이다. 교단과 교파를 떠나 한국교회가 먼저 ‘하모니 축구’의 미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빛과 소금-윤중식] ‘경성의 풋뽈’과 하모니 축구
입력 2018-09-2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