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 정상회담 평양’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이 얼마나 진솔한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비핵화 진전에 대한 합의가 나올지, 그런 내용이 합의문에 담길지, 구두 합의를 발표할 수 있을지, 모든 부분이 블랭크(공백)”라고 말했다. 또 “지금은 비핵화가 중심 의제가 돼 있고 성과를 내야 하는 것처럼 기대감이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라며 “이 대목이 매우 조심스럽고 어떠한 낙관적 전망도 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임 실장 설명대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특징은 비핵화가 공식 의제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핵 문제가 불거진 이래 줄곧 ‘핵은 북·미가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취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지난 5일 대북 특사단을 만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비핵화 진전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로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비핵화 언급을 꼽았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판문점 선언에 담긴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어를 반복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추가 구두 약속이 나온다면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평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언급이 공개될 통로는 정상회담 합의문, 남북 정상 공동기자회견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될 비공개 메시지가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상회담 합의문에 비핵화 목표 시한이 담기고, 양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때 김 위원장이 핵 신고서 제출 의사를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비핵화 시간표가 전달된다면 최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추진 중인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염두에 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창의적 해법으로 김 위원장을 설득하고 다음 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타협을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대타협에 동의하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지시할 것이고, 그 시점은 10월 초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이 핵 신고 용의를 밝힌다면 한·미 정상이 만나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밝히고,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 핵 신고를 위한 워킹그룹을 만드는 수순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종전선언을 위한 실무회담이 동시 추진되는 구상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만 밝히는 수준에 머문다면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합의문에 핵 신고와 검증 같은 구체적인 조치가 들어가면 좋겠지만 북한이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분명한 어조로 핵 신고·검증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다면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남북 정상 간 합의에 비핵화와 관련해 무엇을 어떻게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기기는 어렵다”며 “우리의 역할은 중재자, 촉진자이고 공을 북·미로 넘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면 된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 공식 수행원에 외교부 장관이 처음 포함된 것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비중 있게 논의하겠다는 의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폼페이오 장관과 40분간 통화하며 회담 준비와 남북 관계 진전 상황을 공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서로 긴밀히 소통해 나가자”고 말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권지혜 이상헌 기자 jhk@kmib.co.kr
임종석 “비핵화는 중심 의제, 합의문 나올지는 블랭크”
입력 2018-09-17 18:11 수정 2018-09-17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