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쳤다가 좌익 몰려 사살된 교사…법원, 유족에게 1억여원 배상 판결

입력 2018-09-17 18:16 수정 2018-09-17 21:47

한국전쟁 시기 소사(小使·잔심부름을 위해 고용한 사람)를 부르기 위해 학교 종을 쳤다가 좌익으로 몰려 군경에게 사살당한 민간인 피해자의 유족이 68년 만에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설민수)는 민간인 피해자 고(故) 양모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양씨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전남 보성의 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그는 소사를 부르기 위해 종을 쳤는데 경찰은 빨치산의 도주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후 양씨는 풀려났지만 같은 해 12월 인민군에게 점령당했던 보성이 수복되자 다시 군경에 끌려가 산골짜기에서 사살됐다.

2008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씨는 신원이 확인된 전남 동부지역 희생자 35명 중 1명에 포함됐다. 유족은 지난해 12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위의 기록을 보면 양씨가 민간인 희생자임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보성 경찰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양씨를 사살해 기본권을 침해했으므로 국가가 재산상·정신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는 진실화해위의 진상규명 이후 3년이 지나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족은 2016년 말에야 양씨가 희생자로 등록된 사실을 알았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진실규명 결과가 나왔을 무렵 진실화해위가 유족에게 통지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