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승태 행정처 ‘정운호 게이트’ 영장 사실상 기각 지시

입력 2018-09-16 21:42 수정 2018-09-16 23:24

현직 법관들 수사 막기 위해 신광렬 前 부장판사에 하달
영장판사들, 지시였다지만 수사기밀 유출… ‘수족’ 노릇
임종헌 대포폰 수색영장 기각 現 영장판사들도 대동소이 분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 법원행정처가 2016년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 7명에 대한 검찰의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들에게 사실상 ‘영장 검열’을 지시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당시 영장전담 판사들이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첨부된 수사 자료를 행정처에 보고하며 ‘수족’ 노릇을 한 정황도 짙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이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통해 “검찰이 다른 사건에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끼워 넣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지시를 내린 정황을 파악했다.

검찰이 다른 사건에 대한 영장을 청구하면서 비위 판사 관련 영장을 포함시킬 수 있으니 면밀히 가려내 기각하라는 취지로 읽힌다. 당시 행정처는 관련 수사 무마 목적으로 신 부장판사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통해 수사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었다. 검찰은 판사 관련 영장을 기각하라는 지시가 동시에 하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명백한 재판개입 사례라는 것이다.

당시 작성된 문건을 보면 서울중앙지법은 정운호 게이트 수사 기밀을 행정처에 ‘통째로’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신 부장판사는 2016년 8월 행정처에 보고한 ‘김수천 부장 대응방안’ 문건 등에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뇌물을 받은 김수천 부장판사 관련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또 ‘검찰은 광범위한 계좌추적 및 통신조회로 법관들 비위행위를 면밀히 파악했다’는 취지의 보고도 했다. 신 부장판사는 “선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 압박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수사 기밀은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에게서 유출된 것이다. 신 전 부장판사의 보고 문건에는 ‘법조 브로커 이민희·이동찬과 정운호는 법원 관련 진술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전관인 최유정·홍만표 변호사의 통신조회영장이 발부돼 판사·검사 접촉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는 등의 내용도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였던 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를 최근 소환해 “신 부장판사의 요구로 영장에 첨부된 수사 자료를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들은 자료 제출에 대한 거부 의사를 ‘윗선’에 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 식구 감싸기’는 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들도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임 전 처장의 ‘대포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며 “기본권을 고려하면 압수수색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규명 필요성을 강조한 직후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포폰 사용 자체가 불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기본권 운운하며 영장을 기각한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