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정부 최고위자들이 ‘금기’로 통하는 금리정책을 건드려 양국 중앙은행이 동병상련에 빠졌다.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변곡점에 서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팔 비틀기 식’ 금리정책은 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한국은행은 거울에 비친 대칭처럼 반대 환경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 정부는 기준금리를 올리라고 주문하고, 미국 정부는 올리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전자는 부동산 과열에 따른 가계부채 뇌관 폭발을 우려한다. 후자는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 활력을 꺾고 있다고 본다. 방향은 반대지만 의도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부동산 과열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중앙은행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논란을 낳았다. 이 총리는 “(2014년) 당시 기준금리 인하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빚내서 집을 사자’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가계부채 증가의 역작용을 가져온 게 사실”이라며 현재 부동산 과열에 대한 책임론까지 들고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준금리를 너무 빨리 올려 대규모 감세정책 등으로 고성장하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요지로 연준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달 말 잭슨홀 미팅에서 여러 명의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내년 기준금리 인상 중단론’을 제시하고 나선 건 트럼프의 전략이 먹히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경우 여당 의원 질의에 이 총리가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 정책을 편 박근혜정부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부동산 시장이)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있다”며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었다. 한은은 같은 해 8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5차례 내렸다.
현재 한은의 금리정책은 중대 시점에 와 있다. 당장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향후 기준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지켜봐야 할 입장이다. 미국의 인상 속도에 따라 한·미 금리 격차, 금융시장 충격 등을 계산해야 한다.
한은은 지난 14일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윤면식 부총재를 통해 중립적, 자율적 금리정책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윤 부총재는 “통화정책이 부동산 가격 안정만을 겨냥해서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주열 총재도 최근 사석에서 부동산 과열은 가계대출 규제 등 금융정책을 통해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금리 인상론의 부적절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정부의 금리 인상론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2014년의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독립성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16일 “이 총리의 발언이 전제조건이 된 이상 한은이 어떤 결정을 해도 통화정책이 불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
정치인 압박에… 딜레마에 빠진 한·미 금리정책
입력 2018-09-17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