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소송 문건 읽었다” 대법 연구관들 검찰 진술
靑·외교부 입장 등 담겨 재판에 영향 줬을 가능성… 영장 기각 명분 사라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개입 검토 문건이 2014년 대거 대법원 측에 전달된 사실을 검찰이 파악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검토 문건에 이어 대법원에 전달돼 이행된 재판 개입 문건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재판 거래가 실제 실행된 사실은 없다”는 법원의 주장도 힘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검찰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행정처가 작성한 다수의 강제징용 소송 관련 검토 문건들을 당시 사건을 맡고 있던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최근 문건을 건네받은 재판연구관들을 잇따라 소환조사해 “행정처 검토 문건을 건네받아 읽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문건에는 청와대·외교부가 강제징용 소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 및 요청 사항이 세세하게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13년 12월 차한성 당시 행정처장, 2014년 10월 박병대 당시 행정처장을 비서실장 공관에서 만나 강제징용 소송 지연 및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회동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참석했다. 행정처 작성 문건에는 두 차례의 ‘공관 회동’에 따른 행정처·청와대·외교부 실무자들 간의 논의 사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검찰은 임 전 행정처 차장이 통진당 소송 검토 문건을 김현석 당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현재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통해 유해용 당시 수석재판연구관(현재 변호사)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문건은 통진당 소송 상고심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 검토하는 내용이다. “‘박근혜 청와대’가 상고심 처리의 신속한 처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원세훈 재판 검토 문건 또한 임 전 차장을 통해 대법원에 전달된 점은 앞서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드러났다.
법조계에서는 재판 거래가 실제 이행됐을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강제징용 소송 관련 행정처 문건이 재판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동일한 이유로 기각된 압수수색영장이 수십 건이다.
한 변호사는 “여전히 ‘법원 재판은 독립돼 있다’는 법원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라며 “어떻게 현 상황에서 재판거래가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주최한 대법관 간담회에서 한 대법관은 “검찰이 요구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를 임의제출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사법행정권의 영역 안에서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자는 취지다. 이 제안은 간담회에 참석했던 다른 대법관들이 강력하게 반대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라고 언급했음에도 법원은 재판연구관 보고서, 인사자료 등을 검찰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양승태 행정처, 강제징용 검토 문건도 대법원에 넘겼다
입력 2018-09-16 19:58 수정 2018-09-16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