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전하는 축구 지도자 될래요”

입력 2018-09-17 00:01
2005년 K리그 부산 아이파크에서 뛸 때의 모습. 기아대책 제공
엔제나 펠릭스 호프컵 카메룬팀 감독이 14일 경기도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선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엔제나 펠릭스(38) 호프컵 카메룬팀 감독은 2005년 K리그 부산 아이파크(현재 K리그 2)에서 24경기 출전 2골 1도움이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1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터치라인 밖에서 노란색 재킷을 입고 아이들에게 소리치는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서 축구가 ‘삶의 희망’인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서였다.

지난 14일 오후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주최하는 호프컵 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는 경기도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펠릭스 감독을 만났다. 13년 전 깡마른 공격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미소만은 여전했다.

“어제보단 오늘이 낫네요.” 카메룬이 속한 A조 경기 결과를 묻는 질문에 펠릭스 감독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카메룬은 6개 국가가 속한 A조에서 2위에 들지 못해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펠릭스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페어플레이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축구는 이겨야 제 맛”이라며 “공격수였던 시메옹(14)이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기록하는 순간이 오늘의 명장면”이라고 추켜세웠다.

펠릭스 감독이 카메룬 아이들을 만난 건 11개월 전이었다. 카메룬 중북부 은가운데레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서지혜(42) 기대봉사단 선교사가 주최한 축구경기에 참여한 뒤 호프컵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 지역에서 120여명의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던 펠릭스 감독은 호프컵 감독을 맡아달라는 서 선교사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펠릭스 감독은 은가운데레 지역 비조로 마을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이 ‘축구의 기본도 몰랐다’고 기억했다. 그는 “공을 차며 뛰어다니긴 했지만 축구가 뭔지도 몰랐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훈련하며 각자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을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태신앙인 펠릭스 감독은 어린 시절 유아세례와 학습세례를 받기 위해 3개월 간 성경공부를 했다. 그는 “성경공부를 마치고 첫 성찬식에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축구 지도자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펠릭스 감독은 “은가운데레 지역은 무슬림이 많다”며 “예수님의 말씀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전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펠릭스 감독은 K리그에서 뛰며 힘들었을 때는 성경에 의지했다고 고백했다. 펠릭스 감독은 “밤마다 신약성경을 읽으며 ‘나는 내 축구와 주님을 위해 한국에 왔다’고 다짐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사랑’의 존재를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펠릭스 감독은 “교회든 운동장이든 한국인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봤다”며 “카메룬으로 돌아가면 이런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13일부터 시작된 호프컵은 15일까지 총 22경기를 치르며 마무리됐다. 결승전에서 볼리비아가 코트디부아르를 1대 0으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과천=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