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사법농단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영장 기각, 증거인멸 방조 등 법원의 수사 비협조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태도 변화를 강하게 촉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지금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매우 엄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온전한 사법 독립을 이루라는 국민의 명령은 국민이 사법부에 준 개혁의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이번에도 사법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 1, 3, 4부를 투입해 사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다만 법원의 수사 비협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철저한 의혹 규명을 강조하면서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은 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법원의 입장 변화를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수사 비협조 행태를 당연히 지적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그는 기념사에서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확고한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일선 법관의 재판에 관여할 수 없으나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라며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규명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지난 6월 15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법농단)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강조한 뒤 90일 만에 나온 김 대법원장의 입장이다. 그 사이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90%를 기각했고, 대법원 기밀 문건 파기 등 증거인멸을 사실상 방조했다. 검찰이 요청한 법관 인사 자료, 대법원 재판 보고서 등도 기밀이라며 제출하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이 전향적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현 상황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 상황을 보면 ‘사법농단 시즌2’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며 “‘재판의 독립성’은 정부와 재판을 거래한 인사들을 비호하기 위해 주어진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허수아비”라고 비판했다.
법원은 보란 듯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재차 기각했다. 지난 11일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사무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의 PC에 대해 청구된 압수수색영장이 12일 기각된 것이다. 신 전 부장판사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수사 정보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초유의 법원 수사와 법조계 안팎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검찰 수사가 계속될수록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것이라는 내부의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문동성 박세환 기자 theMoon@kmib.co.kr
70주년 사법부 ‘침통한 생일상’
입력 2018-09-14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