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고위법관 줄소환… 檢, 사법농단 수사 정면돌파

입력 2018-09-13 04:04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이 사법농단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12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검찰이 ‘양승태 대법’ 당시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고위직 판사들을 12일 무더기로 공개 소환했다. 법원이 열 번에 아홉 번꼴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는 악조건에서도 수사 속도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 김현석 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불러 재판개입·법관사찰·증거인멸 혐의 등을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이 전 실장에게 행정처에서 일했을 당시 ‘박근혜 청와대’와 일제 강제징용 소송을 둘러싼 재판 거래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캐물었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이 2016년 9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과 외교부를 방문해 재판 지연, 해외법관 파견 등을 논의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을 상대로 행정처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조사했다. 검찰은 행정처가 2015년 공보관실 운영지원비 3억5000만원 중 각급 법원에 배당된 2억7200만원을 돌려받은 뒤 같은 해 3월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각급 법원장에게 1000만∼2000만원씩 배분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날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는 행정처 차원의 조직적 시도에 이 전 실장이 개입했는지도 캐물었다.

검찰은 또 유 전 연구관이 ‘증거인멸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도 “지난 6일 관련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파기했다”고 10일 행정처에 밝힌 경위를 집중 조사했다. 유 전 연구관은 12일 검찰 출두 전 “서약서는 작성 의무가 없는 것이고, 검사가 장시간 동안 서약서 작성을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검찰 조사에서 자료 파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에는 “추궁당할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고 대법원에서 회수를 요청한 상황이라 입장을 표명하기가 난처했다”고 했다. 검찰 조사 다음 날 현직 판사들에게 ‘구명 이메일’을 보낸 데 대해선 “제 안위를 걱정하는 연수원 제자, 법대 동기, 고교 선배 극소수에게 보냈다”며 “조사를 받기 전 언론을 통해 범죄자로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에서 억울한 처지를 주변 사람에게 호소조차 못한다는 건 불공정하다”고 토로했다.

검찰은 이날 유 전 연구관의 후임인 김 연구관도 소환해 2016년 통진당 의원 소송 관련 문건을 유 전 연구관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자세한 경위를 파악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