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수곤] 민간 중심의 재난응급체계 갖춰야

입력 2018-09-13 04:00

최근 일주일 사이 서울 가산동과 상도동 신축공사장에서 흙막이가 붕괴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가산동에선 인접 아파트 주민 200명이 대피해야 했고 상도동에서는 122명의 원생이 다니는 인접 유치원 건물까지 붕괴됐다. 상도유치원은 지난 2월 초부터 4월 중순까지 행정안전부 주도로 실시된 국민안전대진단에서 안전하다고 판단됐던 건물이다.

필자는 지난 3월 말 상도유치원의 자문의뢰로 현장조사를 실시했는데 붕괴 가능성이 커 동작구에 안전진단 재검토를 제안했지만 무시됐다. 구는 방관했고 5개월 후인 지난 6일 붕괴사고로 이어졌다. 가산동 공사장도 붕괴 10일 전 안전이 우려된다는 민원을 금천구에 제출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행정 관청이 사전 경고를 무시하는 바람에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1997년 논문에서 우면산 산사태 가능성을 지적했다. 또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 때 폭우로 우면산 2곳이 크게 무너져 서울시장에게 시급한 보강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46쪽짜리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시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이듬해 여름 집중호우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16명의 사망자를 내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필자는 싱크홀 등이 우려되는 취약지역의 인허가에 사용하라고 99년 3차원 서울 땅속 지질도를 작성해 서울시에 줬다. 그러나 15년간 활용하지 않았고 4년 전 송파구 일대에서 싱크홀 사고가 빈발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열린 국회 공청회에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공무원의 무사안일 적폐를 지적했다. 필자는 우면산 산사태를 예로 들었는데 다른 분야 전문가가 “분야는 달라도 공무원들의 행태는 너무 똑같다”며 한탄했다.

공무원들은 현장의 근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4일 사패산터널 주변 도로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배수관로 설치가 잘못된 게 원인인데 노후관로 때문으로 간주한다. 지난해 7월 충북 청주 2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각각 1명씩 숨졌는데 해당 지역은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아니다. 산림청의 위험지역 지정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지방자치단체가 산 밑에 건축물을 인허가할 경우 조그만 옹벽만 쌓도록 해도 산사태로 인한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는데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은 관료적이어서 신속한 대응력이 떨어진다. 구청 담당자는 업무량이 과다하고, 전문지식도 부족해 현장에 가도 상황파악이 안 돼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것도 사고 재발 방지에 걸림돌이다. 공무원들은 우면산 산사태, 가산동과 상도동 흙막이 붕괴의 원인이 비라고 변명했다. 흙막이는 비가 오는 것까지 고려해 설계하기 때문에 폭우가 원인이라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상도동 붕괴사고 직후 서둘러 현장을 메우고 건물을 철거한 것은 증거를 훼손시켜 원인규명을 어렵게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공무원들은 그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또 새로운 기술과 예산, 공무원 조직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게 해결책이 아니다.

재난을 예방하려면 국민이 주도하는 응급재난조직이 필요하다. 공무원에게만 맡겨 놔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고착화된 부처 이기주의, 일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끊으려면 국민이 견제해야 한다. 현장에서 민간 전문가들이 책임지고 사전 예방 및 응급처방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지역 문제는 주민들이 가장 잘 안다. 우리 지역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국민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24시간 전국 주민안전 응급봉사대’를 지역별로 만들자. 퇴직 경력자 등 현장 경험이 많은 지역 전문가들에게 응급대책 권한을 부여해 재난 발생 시 골든타임 안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들의 행정 처리를 도와주고 중앙정부는 전국적인 119 신고센터 및 큰 틀의 재난관리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